제주제일고등학교를 설립하게 된 동기는 1951년 8월 31일 교육법개정에 따라 6년제 제주농업중학교가 분리되면서 4, 5, 6학년은 제주농업고등학교로, 1, 2, 3학년은 제주제일중학교로 개편되게 되면서 그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1951년 9월 20일 개교를 한 제주제일중학교는 초창기 학생이 졸업 후에 동일 구내에 위치해 있는 제주농업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원하지 않았고 대신 오현고등학교나 기타 학교로의 입학하는 성향이 두드러졌다.
당시 제주시 지역에는 오현중학교와 제주중학교 등 2개교의 남자 사립중학교가 있었는데, 이들 학교는 모두 동일 구내에 동일 계통의 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어서 상급학교 선택이 매우 편리하고 합리성마저 띠고 있었다. 그러나 제주제일중학교인 경우 동일 구내에 위치한 동일 계통의 고등학교가 없어 졸업생들의 제주농업고등학교 기피 현상과 타 학교 선호 경향은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제주제일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동일계 고등학교의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1954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당시 지역사회의 뜻있는 인사, 교육자, 학부모와 제주제일중학교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학교설립 추진후원회가 주축이 되어 제주제일고등학교의 설립을 위한 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다. 결국 이 작업이 빛을 봄으로써 신입생 모집에 적극 나서게 되는데, 당시 제주제일중학교 문성종(文鍾成) 교장이 모집 사무를 담당하게 된다.
1955년 4월 27일 제주제일고등학교의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5월 2일 제주도지사 명의의 신입생 모집에 관한 공문을 접수하고 신입생을 선발하여 1955년 5월 16일자로 문을 열게 된다. 형극의 길로 들어서는 문이었지만, 미래를 약속하는 그런 문이기도 했다.
제주시 이도 2동 1650번지에 자리 잡은 제주제일중학교 가교사가 제주제일고등학교의 요람이었다. 신입생은 1개 학급에 76명, 당초 문교부로부터 인가 받은 학급수의 3분의 1이었다.
신입생들은 대부분 제주제일중학교 교직원들의 설득에 호응했거나 스스로 제주제일고등학교에 대한 기대 때문에 개교의 날만을 끈질기게 기다린 학생들이었다.
학교장은 제주제일중학교 교장이 겸임했고 교장 1명에 교감은 미발령 상태, 정식교사는 1명에 강사 3명으로 짜여졌는데, 강사는 주로 초빙된 인사들이었다. 개교식은 제주제일중학교 2개 교실을 터서 만든 강당이랄 것도 없는 곳에서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초라하기만 한 입학식장 이었다.
그러나 참석한 모두의 가슴은 개척자적 정신으로 제주제일고등학교를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반석 위에 하루 빨리 끌어올리자는 비장한 결의로 가득 찬 분위기였다. 이 자리에서 문종성 교장은 “이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고난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고난을 빠른 시일 안에 끝내기 위해서는 스승과 제자, 학부모가 한 덩어리가 되어 무거운 짐을 함께 져야 한다. 스승은 확고부동한 교육철학과 연구의욕, 제자 사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인격자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며, 제자들은 나름대로 이상 구현을 위한 의지로 면학정신과 애교심을 갖고 스승의 뜻을 잘 따르는 한편, 제주제일고등학교의 뿌리갖나’라는 긍지를 항시 지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는 스승과 제자가 정도를 제대로 걷고 있는가를 늘 살펴보는 격려자로서의 자세를 갖춰주었을 때, 비로소 제주제일고등학교는 형극의 길에서 빨리 벗어나 성장을 향한 지름길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학교 교훈은‘도리를 밝혀 건실하게 살자’였으며 제대로 된 모표(帽標)도 배지도 없이 제주제일고등학교는 이렇게 출범했다. 현재의 노형벌, 웅장한 규모의 모교와 비교해 볼 때 금석지감이 없지 않다.
▲노형벌 신교사 이전
제주제일고등학교의 제2세대가 새로운 역사창조를 약속하면서 노형벌에 닻을 내렸다. 27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 시련과 영광 속에 함께 호흡해 온 광양벌 시대를 마감하고 1983년 1월 5일 제주제일고등학교는 드디어 노형벌 광활한 터전에 웅장한 배움의 전당을 세웠다.
1955년 5월 16일, 아우학교인 제주제일중학교의 허름한 교사를 빌어 겨우 개교를 한 제주일고는 개교 50주년이 지난 오늘날 전국 수준의 시설과 규모에다 학력과 체력도 그와 걸맞게 튼튼한 반석 위에 새로운 뿌리를 활착시킨다.
제2의 역사를 창조해 나갈 제주일고의 새 보금자리는 제주시 노형동 80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으로는 태평양 물줄기가 넘실거리는 일망무제의 짙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남으로는 일고 건아들의 호연지기를 키워줄 한라영봉이 너그러운 모습으로 버티어 서있다.
총부지 1만6000여평에 시설면적 2200평의 노형벌 캠퍼스 시설현황은 체육장과 보통교실 27실, 특별교실 7실, 그리고 어학실, 시청각실, 도서실, 자료실이 각 1실씩이며, 상담실 2실에다, 호국단실, 양호실, 방송실이 있고, 3실의 관리실과 각 학년용 휴게실까지 마련돼 있다. 또 인쇄실과 체육실, 미술실, 실험실, 구내식당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1,430㎡ (430평) 규모의 실내체육관은 1984년 2월 준공됐는데, 농구, 배구, 핸드볼, 체조 등의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마루경기장과 본부석, 관람석, 실내방송실 및 선수대기실 4실, 관리실, 유도실, 임원실이 1실씩에, 샤워실과 화장실을 각 2실씩 갖추고 있어, 고등학교의 실내체육관으로는 수준급을 넘는다. 또한 축구장과 배구경기장은 핸드볼, 야구, 정구, 씨름등의 경기장으로 겸용할 수 있는데, 축구장은 1984년 5월, 제 13회 전국 소년체전 때 축구경기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훌륭한 학교건물과 시설을 갖추는 데는 이설사업계획의 수립으로부터 3년여, 그리고 1982년 5월 13일 착공을 알리는 첫 삽을 뜬 지 7개월 만이었다. 대구시 소재의 화성산업주식회사가 시공한 이전의 역사(役事)에는 모두 18억 2천만원이 투입되었다. 이설사업은 비교적 순탄한 과정을 밟아 계획대로 추진되어 1983년 1월 5일 완결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성공리에 끝난 이설사업의 바탕에는 27년간 광양벌 시대를 희노애락으로 이끌어 왔던 제주제일고등학교 모든 가족들의 땀과 눈물이 진하게 깔려 있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콩기름의 기마전과 연전연승의 탁구, 대입국가고시의 영광, 꽹과리 부대, 교실방화사건, 원희룡의 전국학력제패 등 숱한 희비를 연출했던 광양벌시대의 제주제일고등학교가 배출한 동문(1회∼26회)은 6277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노형벌로 이전한 후 2006년 2월 8일 제49회 졸업생을 배출하기까지 1만6850명의 인재를 배출하였다.
강 선 종 (기획실장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