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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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에서 공항 리무진을 타고 신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오후 7시 3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5시간 동안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향하여 대한항공은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불빛하나 보이지 않은 캄캄한 밤. 5시간 후에야 멀리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켜 놓은 빛이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불과 5시간 밖에 안됬지만 우리는 벌써 땅(육지)위에 켜 있는 빤짝이는 불빛을 보니 고향에라도 온 것같이 반가웠다.
 잠시 후 대한 항공은 하노이 공항에 조용히 착륙했다.밤이라 그런지 아니면 사회주의 국가라서 그런지 공항 안 분위기는 정적이 감돌 정도로 어둡고 썰렁하였다. 우리는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눈앞에 대형버스 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보는 순간 나는 눈이 빤짝하였다. 현대 차였다.
 우리나라가 만든 우리차!
 국내에서 못 느꼈던 아늑함과 그 고마움...
 나는 너무 좋아서 눈물이 솟았다.
 우리나라가 만든 우리차에 당당하게 몸을 싣고 좌석에 앉으니 한국인으로서 두 어깨가 으쓱해졌다. 멀고 먼 이국 땅에서 그것도 여행길에 우리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유별나게 눈물이 많아서 인가. 몇 년 전 중국 상해에 갔을 때도 그랬다. 상해에 있는 홍구 공원에 갔었는데 그곳에 애국지사 윤봉길사당에 들어가  그분의 영정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겨우 사당을 나와 일행과 같이 걸으면서도 그날 종일 나는 눈물이 흘러내려 손수건 서넉장은 넉넉히 적셨다.
 그리고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랬다. 그때 우리 국민이 하나가 되어 “오!필승코리아! 아!대한민국!”을 외쳤던 붉은 악마의 그때 그 함성!
 그때도 나는 너무 좋아서 목이 매고 눈물이 솟아 내렸다. 땅덩이는 비록 작지만 그래도 나에겐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음에 어디가도 고맙고 든든하다. 그것도 외국에서 우리나라가 만든 우리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가슴 뭉클한 남다른 감격이 아닌가!
 나 혼자 감격에 젖어 있는데 30세쯤 보이는 키가 작고 마른 청년이 훌쩍 우리차에 올랐다.
 그리고 차에 오르자마자 그 청년은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 공화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고였던 눈물은 어디로가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매나 골격,말씨로 보아 베트남청년이 분명한 것 같은데 그는 한국인이라 하였다.
 고향은 충청도 보령,학력은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와이프는 베트남여성이라 했다. 아무리 뜯어보고 또 뜯어봐도 베트남인 것 같은데 한국인이라 하니 믿을 수 밖에...
 그는 우리나라 말을 썩 잘했고 우리 일행은 그 가이드를 따라 하노이 중심가에 있는  ‘호라이즌’특급 호텔까지 이동하고 여장을 풀었다. 아침 6시에 모닝콜이 울리고 7시에 호텔 3층에서 뷔페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이곳시간으로 8시경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순간,
“와따따, 와따따 와따따.....”
 굉장히 시끄럽게 들려오는 큰소리에 놀라 눈을 돌렸다.
“와-아! 와-아! 와-아!  이럴수가!  이럴 수가!”
 홍수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오토바이의 대물결!
 ‘호라이즌’호텔을 중심으로 Y자 길 가득히 흘러가는 몇만대의 오토바이들...
 걸어가는 사람은 한사람도 안 보이고 길가득 모두 오토바이였다. 승용차나 버스가 5~6분에 한대씩 간간히 섞여 지나가는데 모두 오토바이물결에 묻혀 오토바이와 함께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 러시아워를 피해서 9시30분쯤 버스를 타고 땀콤으로 이동하면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거리를 눈여겨 보았다. 길가 집들은 폭이 너무 좁아서 입구밖에 안보였다. 가이드에게 물어 봤더니 폭이 모두 3m라 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라 공평하게 분배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됬다는 것이다. 폭이 3m, 길이 10m이고 보니 양 벽은 문을 낼 수 없어 모두 굴같이 컴컴하고 어두웠다. 그러다보니 아래층은 전부 부엌, 2,3,층은 방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중국의 지배를 천년이나 받았고 프랑스의 지배도 100년을 받았으며 월남전쟁을 10년이나 하다보니 남은 것은 가난과 자존심 그리고 설움뿐이었다.
 그러나 그 압박과 그 설움에서 잘 견디고 이겨낸 국가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어렵고 가난하게 보였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은 순수하고 바르고 깨끗하고 자존심이 강하여 최소한 불행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 곳은 가난도 있지만 희망도 있었다.
 홍수처럼 흘러가는 오토바이 대물결속에서 베트남은 오늘 용트림하며 분수처럼 힘차게 솟고 있었다.
 잘 살아보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힘차게 달리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시민들..,
 지금 여행에서 돌아온 지 몇 개월이 지났어도 눈만 감으면 밀려오는 그 오토바이의 그 물결, 그 소리...
 희망의 나라 베트남!
 가난은 희망을 만들고 희망이 있는 곳은 어디나 활기차고 아름답다.
                                           
고   길   지 (제주도여류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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