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패한 분재의 열매
샐패한 분재의 열매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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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에는 작은 정원이 있다. 한 50평쯤 되는 작은 마당이지만 사계절 느낌을 호흡 할 수 있고 마음의 울적함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사시사철 푸름을 유지 할 수 있도록 큰나무들도 조금 심었고 과실수 분재도 조금 가지고 있다. 사과분재, 감귤분재, 배나무 분재. 매실분재 등등을  가꾸며 분재와 대화를 하면서 삶의 버거움을 버티어 보려고 노력한다.    “가꾸는 대로 거둔다.” 라는 말만큼 평범한 진리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나는 아주 부끄럽고 안타까운 분재열매수확을 했다. 아기사과 분재는 아주 잘 열렸다. 그런데 밀감과 배는 평년에 비하여 반농사가 안 되었다. 밀감은 매년 20개는 여는데 다섯 개 내외이고 배는 비록 돌배이지만 평균 두세 개는 열어서 팔월 추석에 친족들이 모이면 하나 따서 만져보기도 하고 조금 먹어 보기도 하던 분재였다.
그러니까 작년 봄, 5월 장마 시기부터 7월까지 농약과 영양제를 서너 번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렇다가 8월이 되어서야 마당에 모기가 많아서 모기약도 할 겸해서 아주 늦게 농약과 영양제를 했다.  하지만 밀감분제와 배분재가 열매가 여러 개 열리지도 않고 열린 것도 병들어 반병신 열매들이 되었다.  배분재에는 열매가 두개 있다가 하나는 떨어져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어느 덧 잎도 노랗게 변해 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 졌다. 그러나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출근길과 퇴근하는 길에 확인하는 버릇이 되었다. 그렇지만 열매는 조금 자라는가 싶더니 더 이상 크는 것 같지 않았다.  그걸 바라보는 것이 즐거움보다 안타까움이었다. 동네사람 누구라도 볼까봐 두려웠다. 농사란 그 되어진 상태로 농부를 헤아린다고 했는데 이 배분제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열매도 열매지만 그 분재가 튼튼해 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배 열매를 따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걸 책상위에 올려놓고 볼 때마다 가꾸는 시기를 놓친 농부의 마음이 되어 보곤 했다.
배분재뿐 아니라, 모든 식물들을 좀 늦게 가꿀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낸 것이다. 넉넉한 햇볕과 바람과 비가 적당하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식물은 제대로 성장 할 수 없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조건을 무시해 버린 나의 죄는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볼품없는 배를 보며 내 삶의 순간들을 생각해 본다. 해야 될 일을 미루어 버린 것. 제때 하지 못해 많은 손실을 보게 되었던 것, 그런 것이 모두 내 탓이었던 것이다. 
내방 책상위에 가냘픈 하나의 배 열매야 말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내 삶의 실상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아주 큰 것도, 아주 작은 것도 보지 못하고 너무 파장이 큰 것도 너무 파장이 작은 것도 듣지 못한다고들 한다. 다른 것을 통해 나를 보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치일 것이다. 게으르고 덜되고 모자람만으로 채워진 나의 실체, 그런데도 나는 얼마나 오만하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세상을 살아 왔을까,
부끄럽다. 자신만만하게 나를 드러내어 놓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지난  날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돌아보니 그저 부끄러운 것들 뿐이다. 좀더 빨리했어야 할 일들이 많았고 건사를 보다 열심히 했어야 할 것도 많았다.
아이들의 공부를 못 한 것도 나의 게으름인 것 같고 부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나의 잘못이 많은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이젠 다급해진다. 모든 것을 신중히 해야 되겠고 서둘러야 하겠다. 할일을 제때 하지 않은 것이야 말로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이다.  나는 어쩌면 부끄러운 열매 하나로 지금 정신적으로 가장 큰 수확을 한 것이다.
철 지난 말라버린 배 열매를 만져보며, 나의 잘못된 생활 습관을  순리적인 자연의 섭리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참회의 용서를 빌어 본다..

김   찬   집 (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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