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호를 위반한 교통사고도 신호등이 제 위치에 설치되지 않았다면 행정당국의 시설 책임을 물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광주고등법원 제주행정1부(부장판사 왕정옥)는 A씨의 유족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공단측의 항소를 기각,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0월 출근길에서 차량을 타고 신호위반을 하다 마주오던 버스와 충돌해 사망했다.
유족이 “A씨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 측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자 공단 측은 “A씨의 재해 원인이 본인의 신호위반(중과실)에 따른 법률 위반 행위 이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유족은 “A씨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도중 발생한 사고는 ‘출퇴근 재해’에 해당하며, 이 사고는 교차로 내의 신호등 설치 관리상의 하자가 상당한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라며 공단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교통신호등은 정지선에서 40m 이내에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사고가 난 교차로의 반대편 신호등은 55m 밖에 서 있어 비가 내리던 궂은 날씨에 피해자가 잘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1심 재판부는 “일부 과실이 있더라도 교통사고가 오로지 또는 주로 A씨의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상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도 “피해자가 배면 신호등이 적색 신호인 상태임을 인식하고도 교통사고나 부상 발생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신호를 위반해 교차로를 통과해야할 급박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