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의 획일화 문화 속에서는 지역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특징지어진 지역문화는 그 특이성을 더욱 발전시켜 글로컬(global+local=glocal) 문화로 거듭났을 때 비로소 국제경쟁력을 갖는다. 제주민속박물관의 진성기 민속학자는 제주도 문화의 형성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다라는 특징으로 불리어지는 제주도의 자연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을 두고 생성된 해양도서적인 고유문화를 기층으로 하여 일찍이 한반도의 문화와 원(元)의 점거하의 영향 등으로 뭉뚱그려지지만 이 전통적 고유문화 위의 이러한 외래적 문화의 요소도 오랜 기간 전승되는 동안 제주도민의 생활 감정에 습합되고 동화되어 다음 시대에 가서는 하나의 전통문화의 고유성을 지닌 모습으로 정착되어져 버리고 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주도민의 전통적인 문화예술은 이렇듯 오랜 세월을 거쳐서 제주 특유의 토양과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왔다. 문화란 원래 경계가 없다. 야만족인 게르만족이 로마의 찬란한 문화에 동화되듯이 문화란 것은 저차원적인 것이 고차적원인 문화 속으로 녹아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주의 민간 대중사회 속에 뿌리내린 문화는 제주 고유의 문화에 외래문화가 섞이어 더욱 고차적인 문화로 시대를 앞서며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가. 귀중한 제주문화에 대해서는 관심을 멀리 하고 오히려 글로벌 시대에 무게중심을 두며, 제주지역의 특이성을 망각하고 세계화의 획일성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지역의 특징적 문화를 간직하면서 세계화를 추구하는 글로컬 문화를 창출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선조들의 생활 풍습 중에 오히려 글로컬한 문화가 많아 지금의 우리들 보다 앞선 의식을 갖고 있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의식적으로 세계화 속에서 우리의 지역문화를 세우려는 의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성립한 문화들이지만 선조들의 그런 의식이 지금 이 시대에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그 중의 하나를 가족제도 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의 풍속 중에 자녀가 결혼을 하면 부모와 별거생활을 하였다. 이것을 ‘분짓’ 또는 ‘짓갈름’이라고 말한다. 부모 집과 자식 집은 독립세대를 이루게 되는데 이것은 자녀를 한 가장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독립된 개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신적인 유대만은 여전히 이어진다. 제주도 집의 구조를 보면 한 울타리 안에 안채(안거리), 바깥채(밖거리)가 마주보며 각각 독채로 지어졌다. 자녀가 결혼을 하면 특히 장남인 경우에는 한 울타리 안 독채에서 지내게 되지만 각각의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부모가 아주 늙어도 따로 밥을 해먹는다. 물론 서로 맛있는 음식을 하게 되면 나눠주고, 부모가 아주 늙어 밥을 못하게 될 경우나 아플 경우는 자식이 부모를 지극하게 봉양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도의 풍속에 대해서 육지에서 온 사람들은 어떻게 한 울타리에 자식과 부모가 살면서 늙은 부모가 따로 밥을 해서 먹게 놔두는지, 그런 자체가 불효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처음에는 제주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대부분 말한다. 그러나 좀 더 알게 되면 그러한 가족제도가 매우 합리적이고 개인 존중의 상부상조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 울타리 안에서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과거의 전통가옥의 구조를 현대건축에 절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한 정신은 친족이나 이웃 간에도 집안의 ‘먹씰일’ 즉 ‘먹고 쓰는 일’로서 ‘잔치 먹으레 가게!’, ‘식게 먹으레 가게!’ 등 서로 돌아보는 일로써 부조를 하고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어릴 적 친척집에 제사가 있을 경우 제삿날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에 떡과 ‘식겟밥’을 이웃에 골고루 나누어준 일이 생각난다. 보리, 조밥만 먹던 일상 식생활에서 하얀 쌀밥인 ‘곤밥’이라는 것은 제삿날이나 큰일 때만 먹는 귀한 별미였다. 그런 귀한 음식을 나눠 먹음으로써 이웃과 두터운 정을 유지하였다. 다만 경제적으로 풍족한 오늘날 이런 아름다운 풍속들이 점차 사라지고 이웃과의 정 또한 사라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늘날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그러한 풍속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신만은 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 섬 전체에 박제되어 있는 독특한 문화들을 발견하고 복원하여 살아서 움직이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지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또는 우리 의식 속에 비과학적인 저급문화로 밀쳐버린 신화, 전설, 무가 등 제주도민의 전통문화의 원천이 되는 자료들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오늘 우리의 정신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미래사회에 빛을 발할 수 있는 독특한 제주문화의 초석을 마련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제주의 특이한 지역 문화를 국제 감각에 맞게 유지시켜 나가면서 제주 온 섬이 인류의 문화가 살아서 움직이는 종합박물관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해본다.
강 연 옥 ( 시 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