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화의 연속
새해 첫 화두는 두말할 필요 없이 경제살리기다. 그 방법을 놓고 정치권이 뜨겁다. ‘증세와 감세’를 놓고 갑론을박이다. 소득이 높은 자, 가진 자에 대해 더 많은 세를 매겨 이를 분배하자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세금이 어디 가진 자에게만 매겨지는가. 못 가진자, 안 가진자에게도 똑 같이 세금이 매겨진다.
결국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저소득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경제양극화에 따른 서민의 고통은 불가피한 수반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진단.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나 서민고통은 경제양극화가 낳은 ‘파생아’가 아니다. 빈곤의 지속이 낳은 우리경제의 아픈 자리다. 때문에 양극화가 아닌 빈곤화의 연속선상에서 이를 봐야 하지 않을까.
90년대초 전국적으로 유행을 탄‘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이를 영화로 다룬‘홀리데이’가 극장가에 턱하니 자리잡고 있는게 그렇다.
지금 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는 현실속에 살고 있다.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 곁에는 세금을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빈곤층이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연말연초에 구세군이라는 이름으로, 불우이웃돕기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소리내고 생색내며 해주는 게 고작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되새겨 봐야 할 때다.
가난이 죄가 돼서야…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의 구속영장실질심사 법정에선 80년대초 법적으로 금지했던 과외여대상에게 내려졌던 것과 비슷한 판결이 내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피의자 이모씨(20). 이씨는 초등학교 1학년때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자 이씨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중학교때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그런 이씨에게 세상은 비행(非行)무대였고 유혹의 현실이었다. 16세에 소년원에 갔다온 후 목수 일을 배워 삶을 영위했던 이씨는 결국 지난해 말 유혹을 이기지 못해 죄를 지었다. 이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성장과정을 얘기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의 인생사를 들여다 본 영장전담 박철 부장판사는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의자는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도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 그는 우리 사회에 대해 한번쯤 용서와 온정을 구할 자격이 있다”면서 “지금이 바로 사회의 용서와 온정이 절실한 시졈이라고 했다.
박 판사는 “이 청년은 주거가 불안정하긴 하지만 장기간 한집에 셋방을 얻어 살았으니 주거부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그에게 이를 구속의 사유로 삼는 다면 이는 그의 가난함을 죄라고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라고 했다. 검찰은 이씨가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했지만 박판사는 “그의 도망을 구속의 사유로 삼기에는 사회가 그의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 할 법관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가난,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사회적 죄를 사회가 다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있는 구속기각이유였다.
한식과 충신
이번에는 한식(寒食)과 충신에 대한 얘기를 하자. 고대 중국 진나라 임금 문공(文公 )이 19년 동안 망명 방랑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유일하게 문공을 보필한 신하는 오로지 개자추(介子推) 한 사람뿐 이었다. 개자추는 임금이 굶주릴 때 자신의 허벅지살을 에어내 목숨을 임금의 목숨을 잇게 했다. 문공이 나라를 찾았을 때 많을 사람을 등용하면서 오로지 개자추를 까마득하게 잊었다. 개자추는 금전산(錦田山)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잘못을 깨닫고 개자추를 찾기 위해 신하를 풀었으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불을 지피면 나올까 싶어 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무 한그루를 부등켜안고 타죽었다. 그래서 이 날만은 찬밥을 먹는 것으로 개자추를 애도하는 한식 민속이 발생했다.
지금 정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충신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옆에 있는 장관일까. 공무원들일까. 아니면 정치권들일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국민의 공복이 아닌가.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위에 서겠다고 소리치는 주변의 가진 사람들. 반면 많은 국민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주머니는 텅 비어있다.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다. 먹고 싶어도 사 먹을 돈이 없다.
이들의 아우성을 막기 위해 증세니 감세니 하는 말로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지필 것인가. 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우리의 충신은 어디에 있는 가. 때늦은 후회로 또 다른 찬밥을 먹는 날이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용 덕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