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에 경험했던 일이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외국 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여행의 감정은 연애의 감정과 비슷하다”(안병욱)는 말이 있지만, 그런 풍류를 즐기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나날의 임무나 속박에서 잠시 해방되는 홀가분함에 들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상의 생활이 인생의 산문이라면, 여행은 인생의 시”라고 하지 않은가? 어쨌든 우리 일행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 도착하였다.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유명한 도시였다.
우리는 여행 도중 기념품을 약간 구입하려고 조그마한 상점에 들렀다. 안내양인 듯한 젊은 여성이 우리를 쳐다보더니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한다. “아리가도” - 그것은 고맙다는 뜻의 일본어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안내양은 아마도 우리 일행을 일본 관광객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서툰 외국어로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했다.
바로 그 때,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나를 아연하게 만들고 말았다. 아니 덜 익은 열매를 씹은 듯이 떨떠름한 느낌이었다. “빨리빨리” - 이것이 미소를 짓는 안내양이 건넨 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유럽에 심어진 한국인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웃 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서 “아리가도”, “쎄쎄” 등의 말을 남기는데, 우리는 “빨리빨리”를 심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홀가분한 여행 감정이 싹 가시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몇 10분의 1초를 다투는 운동 경기만이 아니다. 모든 지식, 정보, 산업들이 경쟁이라는 거대한 강물 위에서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그 물결은 거세다. 조금만 머뭇거리다가는 밑으로 가라앉거나 강물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어쩌면 인생은 영원한 현재의 싸움터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바쁘다는 것은 오늘 우리들의 생활 법칙이기도 하다.
이 법칙 안에서 우리는 촌시를 다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업무를 빠르게 수행하는 것이 현대인의 미덕이요 능력이며, 우승기를 올리는 힘이다. 우리는 촌음을 아끼면서 힘을 기르고 국력을 키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빨리빨리”는 별로 바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입버릇처럼 사용되고 있다. 택시를 타도 “빨리빨리”요, 이발관에 들어가서도 그렇다. 취미나 오락으로 바둑, 장기를 두면서도 상대방이 빨리 응수하지 않는다고 성화다.
이 말이 가장 많이, 그리고 큰 소리로 쓰여지는 곳은 아마도 식당일 것이다. 주문한 음식을 빨리 가져오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욕설까지 퍼붓는다.
그가 결코 바쁘지 않다는 것은 식사를 끝낸 후의 행동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친구들끼리 그 자리에 앉아서 회색빛 시간을 살해하는 대화를 한다. 콩은 팥보다 약간 크다거나, 요즘 여인의 스커트 길이가 아주 짧아졌다는 따위의 대화이다. 그들이 바로 가장 큰 소리로 “빨리빨리”를 외쳐댔던 것이다.
우리는 생활 안에서 윤활유처럼 부드러운 관대성이나 여유, 생명의 탄력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의 여유란 자신의 행복과 더불어 타인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안을 여는 첩경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이런 여유 속에서 인생의 멋을 펼쳐냈던 것이다. “번거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여유로움으로 들어가 보면 한가한 가운데의 진미가 더욱 깊음을 깨달을 것이다.”(채근담) 오늘날의 각박한 개인주의 풍조를 완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좀더 느리게 움직이는 습성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두루마기 입는 동작처럼.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