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 고창일 기자
  • 승인 200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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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를 남과 북의 갈등과 투쟁의 연속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다.
여기서 남쪽은 항상 북쪽에게 패했고 그래서 패배(敗北)는 ‘북쪽에게 졌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단 한번 북쪽을 극복한 것이 바로 호남성 출신의 마오쩌뚱이다.
최근 중국을 주름잡는 세력 역시 남쪽인 ‘상해방’이다.
험난한 지세와 고달픈 환경으로 언제나 강인했던 탓에 매번 이기던 북쪽 중국이 단 한번 남쪽 중국에게 진 이유를 마오(毛)의 ‘낭만주의’에서 찾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낭만주의는 낙관론에 이르고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대장정’을 가능케 했다는 설명이다.
마오가 대장정 중에도 항상 손에서 놓지 않은 책은 바로 초사(楚辭)다.
1972년 미 대통령 닉슨을 맞은 마오의 선물이 바로 이 초사였다.
중국이 죽은 날을 기념해 시인의 날로 삼을 만큼 중국 역사를 통틀어 유명한 굴원(屈原)의 작품이 여기에 들어있다.
전국시대 명문가의 후손인 굴원은 당시 초나라에서 벼슬을 지냈다.
초나라 대부분 정치인들이 당시 강국이던 진(秦)나라와 합종연횡을 주장한 반면 굴원은 반대의 입장을 내세웠다.
지금으로 치자면 ‘6.25는 김일성의 통일전쟁이고 맥아더의 참전으로 애꿎은 희생자만 늘었다’는 식으로 기득권들의 ‘귀에 거슬리는 발언‘을 일삼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은 유배형.
쓸쓸히 강가를 거닐던 굴원에게 고기를 잡던 어부가 다가와 물었다.
‘선생처럼 많이 배우고 잘난 사람이 무슨 일이냐(비아냥을 가득 담은 채)’고.
이에 굴원은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의 먼지를 턴 다음 갓을 쓰고(新沐者必彈冠), 몸을 씻은 자는 옷의 먼지를 턴 다음 옷을 입는 법(新浴者必振衣)’이 라고 응수한다.
‘선비가 목숨을 잃더라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이러한 굴원을 보고 어부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라면서 표표히 자리를 뜬다.
굴원의 비타협적인 엘리트주의를 비웃는 동시에 ‘물이 맑은지 혹은 흐린지 조차 구분 못하는 지식인을 질타한 구절로’ 학자들은 평가한다.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수감된 적이 있고 감방에서 보낸 엽서를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인 신영복교수는 그의 또 다른 저서 ‘강의’에서 이를 두고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중 최고의 가치를 ‘대중 속으로’라는 충고로 압축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치인들의 ‘저만 옳다’라는 아집과 ‘표심을 얻기 위해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지나친 현실타협주의를 다 같이 경계해야한다는 신교수의 해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난해 국내 10대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웰컴 투 동막골’은 이 어려운 고사를 쉽게 풀어줬다.
동막골을 찾은 북한군 장교가 이장에게 ‘(고함 한 번 치지 않고 마을을 이끄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라고 묻자 이장은 간단하게 ‘머든 마니 메겨야지’라고 답했다.

동막골 이장은 ‘대중 속으로’를 몸소 철저하게 지켜온 셈이다.
이제 4개월 후면 다시 제주를 책임질 도지사와 도의원들을 뽑게 된다.
저 마다 적임자임을 내세울 것이고 유권자들은 ‘누가 제주발전에 적합한지를 놓고 갑론을박’에 나설 것이다.
지난해 제주사회처럼 ‘자기의 주장만이 해답인양 주민들의 주머니사정이나 원하는 것쯤은 알바 없다는 듯이 나 홀로 길만 고집하는 인사’들이 정계에 많이 등장한다면 제주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의 환심만 사는 데 급급한 정치인 역시 낙제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부디 이번은 ‘창랑의 물이 맑은 지 아니면 흐린지를 구별해 낼 수 있는’ 어부의 혜안과 ‘머든 마니 메길려는’ 동막골 이장의 지혜를 갖춘 인사들이 정계에 가득 진출했으면 한다.
그래서 삶이 편안해진 도민들은 저 마다의 소중한 갓끈을 꺼내 ‘깨끗하게 손질하는 일’이 잦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올 곧은 출마자들의 건승을 빈다.

고   창   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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