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 각 직장에서 46년생, 47년생 은퇴 과정인 공로연수 등을 진행하는 기사를 읽고 생각되는 것이 많아 칼럼타이틀로 정했다.
나는 정년퇴직이라고 부르는 것 보다 은퇴(retirement)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나이 많은 사람을 노인층이라 부르는 것 보다 실버층으로 부르는 것이 훨씬 멋지고 낭만적으로 들린다. 실버층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넘어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한 노련미와 경륜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 전 임기가 정해있는 지인과 저녁시사를 함께 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소속의 장기발전계획은 자신의 결단으로 세웠는데 진작 자신의 장기계획은 못 세웠다면서 못 내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나보다 경험과 철학의 높은 이 친구에게 친구로서 어드바이스는 못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생각되는 것이 많았다. 물론 이 친구 뿐 아니라 정년퇴직을 맞은 모든 분들의 짙은 허무감과 은퇴 후 무엇을 해서 살까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50대 후반에 회사를 명예 퇴직한 사람들은 ‘오찌누레바’ 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찌누레바’란 ‘비에 젖은 낙엽’이란 뜻이다. 퇴직을 한 50, 60대 남성들이 바로 그런 처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모든 삶은 버릴 때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살아온 가치를, 욕망을, 가졌던 기득권을 버린다는 것은 성취할 때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삶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어렵다 . 등산이 그렇고, 명예가 그렇다, 어렵지만 욕심과 집착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낙오를 당하기 때문이다. 잘 내려와야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외국의 한 TV방송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남부인도에서 코코넛을 이용해 원숭이를 산채로 잡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코코넛 껍데기에 원숭이 손이 들어갈만한 구멍을 뚫어서 속을 모두 긁어내고 비워서 그 속에 먹을 것을 조금 집어넣고 끈을 나무에 연결해 단단히 매둔다. 이 코코넛을 발견한 원숭이는 냉큼 다가가 구멍 속으로 손을 넣고 먹을 것을 한 움큼 잡는다.
그때 숨어 있던 헌팅맨이 다가가면 원숭이는 손을 빼고 달아나려 기를 쓴다. 하지만 먹을 것을 잔뜩 쥔 손을 빼내지 못해 결국은 사냥꾼에게 잡히고 만다. 자신의 먹을 것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가 이렇게 치명적인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 원숭이처럼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여 버려야 할 것을 제때 버리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버리기가 어렵고 욕망에 집착하는 모든 분에게 하프타임(halftime)을 가져 보기를 권하고 싶다. 후반전을 생각하고 작전을 세우는 것은 전반전을 뛴 축구선수들에게만 필요 한 것은 아니다. 삶에 있어서도 필수이다.
인생 전반전을 정신없이 뛰었다면 이제는 남은 인생 어떻게 살 것인지 차분히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전반전에 골을 집어넣고 후반전에 그 골을 지키기 위하여 아등바등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인생축구의 명예는 전반전의 스코어로 충분하다.
전반전이 성공이란 목표를 위해 땀을 흘리는 시기라면 후반전은 의미를 찾기 위한 새로운 인생 여정이 되어야 한다.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죽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볼 것인가.........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고. 현재 그에 가까운 삶은 무엇인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이고, 하루하루를 잔잔한 행복감으로 살고 있는가........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친구로서, 이웃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하프타임 때 남은 삶을 바칠 수 있는 의미를 발견 할 수 있을 것 만 같다. 그러면 은퇴도, 버리는 것도, 나이 드는 것도 새로운 의미로 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찬 집 (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