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건설을 위한 부수 법인 행정체제특별법을 먼저 통과시키자는 의견은 집을 짓기 전에 가구를 먼저 들어 놓자는 말과 마찬가지다”
제주특별자치도 추진에 따른 3개 법률안 연내 국회 통과여부 문제로 제주 전체가 긴장을 곤두세우고 있던 지난달 27일 오후.
열린우리당 소속 한 의원은 돌연 ‘제주 특별자치도특별법을 제외한 행정체제특별법만 분리, 통과시키는데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각 언론사에 배포했다.
그러나 제주도는 당시만 하더라도 이를 ‘어림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같은 성명서가 배포된 다음날(12월 28일) 제주도특별자치도 추진기획단은 한결같이 해당 의원이 ‘잘 몰라서’ 한 일이라고 치부했다.
제주도의 이 같은 ‘순진한 믿음’은 그러나 불과 이틀 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했다.
정치적 ‘야합’?
전날까지만 해도 사퇴의사가 없다던 허준영 경찰청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연말 예산심의 등 현안들을 앞두고 통치권에 부담이 되지 않겠다’며 경찰청장직을 사퇴했다.
따라서 전날까지 경찰청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국회에 들어가지 않겠다던 민주노동당이 자연스럽게 국회로 들어갔다.
물론 한나라당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사학법 장외투쟁에 전념하느라 국회는 염두에도 없었다.
이날 오후 1시 40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열린우리당과 국민중심당의 정진석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특별자치도 관련 3개 법률안을 통과시켜 법사위로 넘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제주특별자치도 3개 법률은 통과가 무난했다.
그런데 불과 3시간 뒤인 이날 오후 5시께.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 4당은 대표회동을 통해 돌연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과 행정체제특별법을 분리 처리키로 했다.
이유는 특별자치도특별법 내용이 복잡해 심도 있는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30일 오후 행정체제특별법과 이를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정작 제주특별자치도의 실체인 특별자치도법은 국회 법사위 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차기 선거 때문에?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제주특별자치도 추진에 따른 3개 법률안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앞뒤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특히 29일 오후 여당은‘마음만 먹으면’본회의에서 통과가 가능했는데도 왜 제주특별자치도 핵심법안인 특별자치도법을 제외시켰는지 아직도 숱한 의문이 돌고 있다.
당시 협의를 벌였던 4당 가운데 민노당은 의료 및 교육개방 문제를 들어 특별자치도법 자체를 처음부터 당론으로 반대했다.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왜 막판 민노당의 주장을 순수하게 수용해 핵심 법률안 통과를 유보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여야는 충분한 논의를 위해서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지방정가에서는 구구한 억측들이 난무한다.
그중 하나가 제주도지사가 현재 야당소속인 점을 감안, 차지 지방선거에서 여당소속 지사후보와 맞붙을 경쟁 후보에게 ‘엄청난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특별자치도특별법을 순수하게 통과시켜 줬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역설적으로 과연 현재 도지사가 여당 소속이었어도 열린우리당이 이 같이 ‘결행’ 했겠느냐고 반문한다.
제주도는 2월 임시국회 때 ‘특별자치도법’ 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한라당 소속 도지사에게 경쟁 후보를 내세워야 할 여당이 제주도의 이 같은 ‘갸륵한 생각’을 수궁해 줄지 의문이다.
꾀 많은 사람이 결국 그 꾀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특별자치도 그 자체일 뿐 결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일부 위정자들이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도민들이 많다.
특별자치도의 주체는 결국 제주도민이기 때문이다.
정 흥 남 ( 편집부국장/정치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