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기도'
'평화의 기도'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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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여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실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성인 프란치스꼬의 ‘평화의 기도문’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망이 너무도 맑고 아름답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잠자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작은 방울 소리였습니다. 작지만 곱고 투명한 울림이었습니다.
2006년 새 해 벽두에 ‘평화의 기도문’을 떠올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도문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을 짜 올리고 그런 희망을 엮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지혜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영역이 너무 팍팍하고 칙칙해서입니다.
미움과 다툼이 갈등을 불러 분열을 일으키고 의혹과 거짓이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캄캄한 세상, 이것이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삶의 영역입니다.
아니라고 도리질 쳐봐도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지겨운 세태의 뒤안길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이런 무도한 현실을 밀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탈출로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평화의 기도문’에 있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거기에는 절망을 이기는 슬기가 녹아 있었습니다.
험한 세상 함께 노 저어갈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가 촉촉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방안이 날줄과 씨줄로 엮어져 촘촘히 박혀 있었습니다.

내가 먼저 남에게 배푼다면

‘남에 대한 배려와 겸손’. 보서처럼 빛나는 기도문의 핵심적 지혜를 감히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남에게 위로 받기보다 내가 먼저 남을 위로하고, 내가 먼저 남을 이해하고, 내가 먼저 남을 사랑하고, 내가 먼저 남을 용서하고, 내가 먼저 남에게 줌으로써 더욱 아름다운 세상.
이것은 욕심을 줄이고 자기를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평화와 사랑의 얼개’입니다.
이것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살면서도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공유의 영역을 넓혀가는 도덕적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이 나에게 베풀어주기를 바라듯이 내가 먼저 남에게 베푸는 배려와 겸손과 양보. 물론 실천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 냄새가 나고 사는 맛이 나는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을 위해, 거짓과 의혹의 그늘이 없는 밝고 투명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칸트가 이렇게 말했듯이 하고자 하면 못해낼 일도 아닙니다. 
이 새벽 또 한 번 ‘평화의 기도문’을 묵상(默想)해 봅니다.

김   덕   남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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