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없앤 '제주혼' 되찾아 뿌듯"
"일제가 없앤 '제주혼' 되찾아 뿌듯"
  • 한경훈 기자
  • 승인 200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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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22호 관덕정 복원공사 팀원들의 감회

1924년 절단된 처마 복원…내년 6월 옛모습 찾아

“관덕정이 제 모습을 찾는 걸 보니 일제에 의해 훼손된 민족정기가 살아나는 것 같아 가슴 뿌듯합니다.”
29일 관덕정 상량식 광경을 보는 최승일(63) 소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관덕정 복원공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최 소장은 1969년 해체ㆍ보수공사 때도 설계를 맡은 바 있어 관덕정과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서울 남대문 보수공사(1962년), 경복궁 근정전 복원공사(2003년) 등에도 참여한 바 있는 문화재 복원공사의 전문가. 2003년 12월 제주에 온 그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을 찾을 정도로 관덕정 복원공사에 매달리고 있다.
“관덕정은 창건 후 여러 차례 증수ㆍ보수 과정을 거쳤는데 이번 관덕정 복원공사는 특히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원형을 되찾는 것으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강조하는 최 소장.
그의 말대로 관덕정은 창건 후 순탄치 못한 역정을 견뎌왔다. 관덕정은 조선 세종30년(1448년)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창건된 뒤 고종 19년(1882년)까지 7차례 증수 과정을 거쳤다.
조선말기에는 학정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조정을 성토하는 집합장소로, 또한 민란 주동자의 처형장으로 이용된 제주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해방 후 1956년까지는 임시도청, 도의회 의사당, 북제주군청 임시청사, 미공보원 상설 문화원으로 사용되는 등 역사적ㆍ문화적 가치가 크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24년 개설도로에 지붕처마가 걸린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일본인들이 15척(454.5cm)나 되던 처마를 2척(60.6cm)이나 잘라버려 관덕정은 그 장중하던 옛 모습을 잃었다.
이번 문화재청의 복원공사에서는 일제시대 잘린 처마와 변형된 용마루, 사라진 기둥낙양과 머름중방 등을 복원하게 된다.
목조건물 시공에 있어 상량식은 목공사를 완전히 끝내고, 전체 공정도 3분의2 가량 진척됐을 때 한다. 내년 6월쯤이면 관덕정은 원래의 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복원공사에 참여 있는 한옥목수(10명) 등 13명은 전원 타지방 출신으로 공사 마무리를 위해 상량식 날에도 구슬땀을 흘렸다.
지난해 10월부터 현장에 합류했다는 김현창씨(37)은 “제주도민들의 관덕정 복원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놀랐다” “제주도 건축물 중 유일한 국가보물 복원공사에 참여한 것에 긍지를 느낀다”며 “복원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병술년 새해에는 관덕정 옛 모습 복원과 함께 척박한 환경에서 억척스런 삶을 일궈왔던 제주인의 혼(魂 )도 되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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