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온 손님
서울에서 온 손님
  • 박세인 기자
  • 승인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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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인 기자 (문화부)

‘454km, 82마일, 245 해리거리’

이것은 서울과 제주시간의 거리다.

지난 달 강신주 박사의 인문학 강의가 제주 벤처마루에서 열렸다. 강신주 박사는 철학박사이면서 스타작가로 출판계는 물론 강연 계에서는 서로 모시려고 하는 전국구 인사다. 강연장은 200명이라는 정원을 넘쳐 추가 인원으로 꽉 찼다. 

강의 중 강신주 박사는 지난해 제주에 와서 오후 7시 강연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강연을 하고 저녁 9시 반 비행기를 타고 갔던 것을 술회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5시간을 걸려 왔는데 고작 한 시간 반 철학 강의 하고 간 것이 후회돼 스스로를 욕하고 질책했다”며 “이번엔 스스로 그런 자신에게 미안해서 호텔을 잡았다”고 밝혔다.

강의가 무르익을 무렵 오후 10시 제주시 자치행정과 담당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선생님 죄송한 말씀인데 저희가 여기 대관을 10시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해해 주셔야할 것이 일요일 저쪽에 있는 직원 결혼식입니다. 이제 그만 나가주셔야 됩니다”

당황한 서울에서 온 손님은 강의를 마무리하고 1층 로비에서 지난해 못 다한 사인회와 사진을 같이 찍으려했다.

또 다시 서울에서 오신 손님에게 다가와 건물 문 닫을 시간이니 나가달라고 했다. 건물 경비원이다.

서울에서 오신 손님은 어두운 밤거리 10시가 넘은 시각, 길거리에서 쭈그리고 앉아 사인회를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강신주에 대한 자료조사가 전혀 안 돼 있다. 강신주 강의는 강의보다 ’다상담‘이라는 코너가 압권인데 그 코너는 밤새 하기도 한다. 그런 것도 알지도 못하고 공간을 이런 곳에 빌리다니. 제주도 오기 힘든 손님을 이런식으로 되돌려 보내나”

강신주 박사 역시 서운한 눈치였다. 장난스레 “내년에 제주도에서 저를 보기 힘들겠다”고 했다.

제주시청 자치행정과는 ‘454km, 82마일, 245 해리거리’외에도 하나 잊은 것이 있다. 그 사람이 제주에 와서 한 시간 반 강의하고 돌아가는 '철학'박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강신주라는 사람의 자료조사가 무지한 상태에서 행정상 유명명사 강의를 하나 운영한 것이다.

제주벤처마루 현관에서는 미안하다는 제주도민들의 말과 담배를 태우며 질의응답을 받겠다는 강신주 박사, 서울에서 온 손님이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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