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고장에 많이 서식하면서 날로 불어나고 있는 까치는 본래 제주도의 토종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도입종은 타향에서 의외로 잘 적응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다. 게다가 이 고장의 토종들을 제압하면서 당당히 군림하고 있다.
때로는 농작물이나 자연환경에 커다란 피해를 주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도 몇몇 도입종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예전엔 청개구리가 울던 연못에 어느 해인가, 외국에서 건너온 황소개구리가 들어앉았다.
이것들은 연못과 그 주위에서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잡아 삼키고 있다. 이리하여 생태계가 균형을 잃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물론 도입종들이 언제나 부정적인 작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토종과 조화를 이루면서 생명 영역을 확대하고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도입종들이 활개를 치는 것은 생태계만이 아니다. 외래 문화는 우리 생활의 전반에 깊숙히 스며들어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는 지금 개방화의 시대, 지구촌의 시대, 그리고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제아무리 흥선대원군이 열 번을 살아 돌아온다 할지라도 더 이상 다른 문명의 유입을 막을 길은 없다. 방안에 앉아서 버튼만 누르면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상히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더욱 편리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문화를 일구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란 교류와 회전을 반복한 나머지 그 토양에 적합한 종자가 발아하고 성장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소운) 그러니까 폐쇄적인 문화는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풀잎처럼 시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한국 속담은 오늘 우리에게 자각을 깨우치는 경종이 되기에 충분하다.
박힌 돌이 쇠약해지거나 제 자리에 버티고 있는 자각을 상실할 때, 굴러온 돌에 의해 제거되는 게 아닐까? 우리가 확고한 토양에 뿌리를 내린 고유 문화를 자각할 줄 안다면 외래 문화의 유입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외래의 모든 문물은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시야를 넓혀 주고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언어 생활도 마찬가지다. 외국어의 바른 습득을 통해 우리의 국어 생활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요즘 영어를 잘 해야 성공한다는 믿음에서 온 사회가 야단법석이다. 영어를 잘 배우고 익혀야 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무한 경쟁 시대에 낙오하지 않으려면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 경쟁력을 키워 나아가야 한다.
영어는 그러한 경쟁력의 밑바탕에 우선 갖춰져야 할 것이므로 반드시 잘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박힌 돌이 든든히 서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말을 제대로 익히고 가꾸는 일이 우선해야 된다는 것을 두말할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외국어를 숙달하는 그만큼 국어를 숙달할 능력이 없다” (쇼오) 고 꼬집은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국어에 대한 관심이나 애착을 아주 저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마구 오염되었거나 정체 불명의 말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면서 우쭐거리고 있는 것이다.
온갖 상처로 피투성이가 되고, 전신이 마비된 수술실의 환자처럼 우리의 국어가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것이다. “우리가 만약 다른 나라의 속국으로 지배를 받고 있을지라도 국어를 잘 보존한다면, 그것은 마치 구속되어 있는 자가 감방의 열쇠를 자기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 (도데)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