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과거제도의 大科에서 수험생에게 책문이란 이름으로 왕이 국정이나 시대상황에 대하여 직접 질문을 하고 그 대책을 필답으로 써서 받쳤다. 광해군 3년에 수험생에게 내린 책문은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인가란 물을 질문이다.
수험생 임숙영은 날카롭게 책문에 대한 대책을 썼다. 당시 시험에 합격을 하려면 보통 서두는 왕에 대한 칭송을 한 다음 논리 정연하게 주제에 맞게 起-承-轉-結을 전개, 끝으로 왕의 만수무강을 비는 내용으로 매듭을 지었다. 그러나 임숙영은 그렇지 않고 직언을 했다.
요약을 하면 ‘조정이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고 인재를 널리 초빙한다하면서 실제는 정반대라서 신문고를 울릴 심정이었습니다. 전하께서 관용을 베푸셔서 훌륭한 임금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정직한 말 때문에 화를 입는 사람이 없게 하신다면 참으로 나라의 복이 될 것입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대책을 도립니다. 후세들이 선대정권이 망한 까닭을 거울로 삼아 하·상·주 왕조가 오랫동안 잘 다스려지고 안정되었던 까닭은 그들이 도덕적인 교화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올 원인을 따르면 나라가 취할 방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재를 바로 고르고 세금제도를 바르게 정하고 부역을 고르게 하십시오. 조정은 붕당을 세워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묻거나 옳고 그름을 자기 당 사람에게는 따지지 않습니다. 조정에 있는 법령은 하나인데 옳고 그르다하는 파벌이 넷이니 해석도 그렇습니다.
국가가 시행하는 조치는 하나인데 붕당이 넷이나 됩니다. 그러니 어찌 국론이 분열되고 혼란스럽지 않겠습니까? 서로 마음을 합해 공경하고 화합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그리고 중요하고 급한 일부터 먼저 해야합니다. 작은 일보다 큰 일을 먼저처리하고, 가벼운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하며, 천천히 해도 될 일보다 급한 일을 처리하고, 쉬운 일 보다 어려운 일을 먼저 처리하면 됩니다. 지난날 태조ㆍ태종 대왕께서 나라를 이루고, 세조ㆍ세종대왕께서 나라를 잘 지켰습니다. 이런 결과는 측근을 엄하게 단속했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배척했으며 총애하는 사람을 억눌렀고 책임을 게을리 하여 안일에 빠질까 근심함으로써 후대의 임금들에게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안팎의 법을 엄격하게 시행해 중상모략과 아첨을 멀리해야합니다. 관리로 나가는 벼슬길을 깨끗이 해서 자격이 없거나 실력이 안 되는 사람을 함부로 임용하는 비리를 끊어 없애야합니다.
환락과 안일을 즐기는 습관을 경계해 오만과 게으름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왕비들이 권력을 쫓아 농단하는 것을 살피지 못하십니다. 보통사람들이 禁令을 어기는 것은 단속하면서 그렇지 못하십니다. 임금이 준 자리는 하늘이 준 자리이고 다스리는 일은 하늘이 맡긴 직분이며 받들 것은 하늘의 명령이고 부지런히 노력할 것은 하늘이 맡긴 일입니다. 임금이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미워하는 일이 없어야합니다. 분수에 넘치는 은혜요행을 바라는 청탁은 없어야 합니다.
직언이 금기가 된 시대를 한탄하며 言官을 둔 것은 충심으로 간언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임금의 허물을 바로 잡으려다가 도리어 임금에게 죄를 받았으니 위로 조정에서부터 아래로 초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말하는 것을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능력에 따라 뽑아야합니다. 왕비의 일가붙이들까지 혜택을 바라면서 관직과 봉록福祿을 얻으려합니다. 紀綱ㆍ言路ㆍ道理ㆍ國力을 다시 새워야합니다. 지금은 온갖 법도가 바로잡히지 않고 갖가지 정무에 결함이 많습니다. 紀綱은 날마다 문란해지고, 風俗은 날마다 붕괴되며, 人倫은 날마다 무너지고, 선비의 氣風은 날마다 低俗해져서, 災殃과 異變이 자주 나타나고 변리도 연이어 나타나고있습니다. 임금의 덕에 누가 되고 세상의 도리가 땅에 떨어지며 온갖 폐단이 일어나고 모든 근심이 생겨나는 원인을 시급히 해결해야함을 말씀드립니다. 잘못을 간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억제 할 것은 억제하고 경계할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입니다. 끝으로 저는 급하고 절실하여 근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죽기를 무릅쓰고 조심스럽게 말씀 드렸습니다.
결국 광해군이 진노하여 삭과 파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영상의 간곡한 주청奏請이 받아드려져 낮은 병과에 합격이 된다. 광해군의 명석한 두뇌로 이 진언을 잘 소화했더라면 王 자리에서 퇴출이란 불명예는 벗어났을 것이다.
지금 청와대에도 미국의 ‘마틴의 법칙’이 지배나, 율곡이 말한 “간신은 관청 밖 비석에 영구히 기억하게 하라“는 말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김 계 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