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경제성장 이면 고용불안 등 역설
과거 패러다임으론 문제 해결 어려워
이윤·효율보다 공동체 가치 우선해야
공공부문 서비스 구매 때 고용 환경 등
가치 고려하는 사회책임조달 활성화
민간 확대 시 ‘더 큰 제주’ 실현 기여
그간 제주는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다. 하지만 그 이면은 어떤가. 화려한 겉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청년실업과 고용불안, 저출산·고령화, 공동체 해체에 급속한 인구 팽창으로 인한 주거나 교통, 심지어 쓰레기문제까지. 이대로는 성장 자체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 대다수 도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데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제주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가 우선되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도정 운영의 핵심원리로 삼아야 한다. 바로 ‘사회책임도시, 제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공공부문에서 가격 이외의 고용, 사회통합, 환경 등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는 사회책임조달을 선도적으로 추진해 보는 건 어떨까. 사회책임조달은 기존의 ‘최저가’ 중심원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최적가치’를 우선하도록 공공조달체계를 획기적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실제로 공공조달은 산업보호와 경쟁력 제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과 공정거래, 일자리 확대와 취약계층 고용기회 증진, 지역 불균형 해소 같은 사회경제적 목적을 달성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시장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공공조달은 평균적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15%에 이르고 우리나라는 25% 정도이다. 올 한해 제주의 예산도 5조 원을 넘어섰고 지역총생산의 30%에 가깝다. 이런 규모를 잘 활용하면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이미 유럽연합이나 다른 나라는 공공조달지침이나 사회적가치법을 통해 사회통합 제고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공공조달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주로 성장률 같은 경제지표에 관심을 둔 반면, 사회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상대적으로 도외시해 왔다. 더구나 효율성을 강조하는 최저가 낙찰제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가 반영되지 못해 공공성을 실현하는데 되레 걸림돌이 되기까지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사회적경제나 기업의 사회책임 등 사회적 가치 실현을 핵심원리로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증진’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하지만 제주지역에서는 아직도 공공기관의 정책수행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실적으로 법적, 제도적 환경이 미비하고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작지만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시작할 때다. 지역경제 발전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고려하는 사회책임조달이 활성화된 도시, ‘사회책임도시, 제주’를 구현해야 한다. 앞으로 제주도를 비롯한 모든 출자·출연기관에서 수행하는 조달, 개발, 위탁, 기타 민간지원 사업에 비용절감이나 효율성만을 중시하기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도록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민간기업들에게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공공 부문이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다양한 사회적경제조직을 활성화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가 먼저 공공영역에서 자리 잡히면 민간부문에서도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다. 사회책임조달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기업의 경제적 지속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지역상생과 동반성장의 유력한 방안이다. 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 없는 사회에서 이제 공공경제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민선 7기 제주도정에서 사회책임조달을 전면적 시행함으로써 도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제주사회 전반의 공공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일자리 창출과 함께 지역사회 재생 등 포용적 성장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
‘사회책임도시, 제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이 공공에서 민간으로 확산되면 도민들이 ‘더 나은 삶’을 함께 누리고 우리 지역이 ‘더 큰 제주’로 발돋움하는 소중한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