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념의 힘이 나쁘게 작용한 실례
벤슨 박사의 신념의 힘에 관한 책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것은 하버드대의 유명한 생리학자 캐논(Cannon)박사가 보고한 말로 신념이 나쁜 방향으로 작용한 한 예이다.
한 대학에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미움을 사고 있는 조교가 있었다. 학생들은 이 조교를 죽이는 흉내를 내어 놀려주기로 했다. 학생들은 그를 데려다 속박하고는 눕혀서 눈을 가리었다. 그리고 한 학생이 젖은 천을 그의 목에 떨어뜨리는 순간 다른 학생은 도끼를 휘둘러 내리치는 소리를 내었다. 덮은 천을 걷었을 때 그 조교는 죽어 있었다. 자기는 죽는다는 믿음이 도끼소리와 젖은 천의 자극으로 하여금 그를 죽게 만든 것이다.
캐논 박사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어느 토인 청년이 여행 중에 나이 든 친지의 집에 잠시 머물렀다.
그 노인은 그 청년에게 조반에 야생닭의 고기가 든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 야생닭은 젊은 세대에게 철저히 금기가 되어 있는 식품이었다. 그 청년은 주인에게 몇 번이고 식사 속에 야생닭 고기가 들어갔는지를 다짐하여 물었는데 주인은 확실히 안 들어 있다고 대답했다.
몇 년 후에 이들 두 사람이 다시 재회할 기회가 있었다. 노인은 그 청년에게 이제 야생닭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금기의 식품이므로 물론 안 먹겠다고 대답했다. 노인은 그를 비웃으며 몇 년 전에 그를 속여 그런 닭을 먹게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말은 그 청년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24시간이 안 되어 그 청년은 그 충격으로 죽었다. 청년은 이런 것을 먹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져왔고 그 신념이 그를 죽게 한 것이다.
벤슨 박사의 말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아프리카, 하이티, 호주, 남아메키카 등지에 퍼져 있는 부두교(voodoo)라는 종교가 있는데 많은 부두교에 의한 사망의 실례가 의학 서적 속에 수집되고 있다고 한다. 호주의 원주민 부락에 있는 그 교의 마술사들은 지정한 사람에게 마법을 걸어 그 사람을 죽게 만든다.
1925년에 허버트 박사라는 분은 목격한 것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죽음의 마법을 자기에게 걸고 있다는 것을 안 그 사람은 비참한 모습이었다. 그는 놀라면서 마술사를 응시하며 그의 몸속으로 쏟아 들어오는 나쁜 매체를 막으려고 손을 들었다. 이어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이 흐려지고 얼굴이 일그러졌고 입에서 거품이 일었고 기절했다.”
■ 신념의 힘이 좋게 작용한 실례
다음의 이야기는 믿음이 좀 다르게 영향을 미친 이야기다. 이것은 지금은 고인이 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교회의 한 목사의 자서전 속에 실려 있는 이야기로 종교적인 사람이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다.
이 말을 하기 전에 잠시 말해 두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은 기독교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절에 가는 것도 아니고 뭐 별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나, 여러 종교서적들을 관심 있게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여러 체험을 쌓아 가고 있기는 하다.
그 자서전 속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목사는 여자 분인데 그녀는 일제 시대에 평양도립병원 산파 간호원 양성소를 나와 간호사가 되었다. 그 때 겨우 50명을 뽑는데 1308명이 응시했었다 한다.
그 때도 경쟁은 지금처럼 치열한 세상이었고 그 50명 중 합격자가 일본인이 대부분이고 한국학생은 5명이었으니 들어가기가 꽤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녀는 3년간 수학한 후 졸업하여 신의주 도립병원 산파주임을 하기도 했고 많은 돈을 벌었다. 이북이 공산화가 되자 월남하였고 결혼한 남편도 남한에 와서 해군 장교가 되었다. 그녀는 서울에 머물다가 진해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사업에 실패하고 가진 돈을 전부 잃었으며 빚쟁이들의 성화에 시달려야했고 심장병과 당뇨병을 얻었고 가정불화까지 생겼다.
그래서 아무도 모른 곳에 가 죽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그녀는 죽지 않았고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나와 서울 서대문고 대조동에 밤이면 올빼미와 여우가 나와 울던 동산에 24인용 미군 천막을 동대문시장에서 구입하여 다른 한분과 함께 개척교화를 시작했다.
그 교회가 성장하여 신도 7천명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대만 일본 등지로 나가 성회를 인도했다.
그런데 일본의 도쿄에 가서 보름동안 성회를 인도할 때였다 하루는 도쿄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이혼을 강요당했으며 소박맞고 서울에 와서 자살하려 하다가 신학교에 들어가 이렇게 하느님의 종이 되었다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예배도 잘 마치고 교회를 나오려는데 한 40세쯤 되어 보이는 어떤 여자가 그녀 앞을 가로 막더니 이런 질문을 하i였다. “선생님, 당신은 그렇게 훌륭한 교회에서 7천명 교인들을 먹이고 설교도 잘하고 기도도 능력 있게 하면서 왜 당신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까?” 그 부인의 말은 아픈 곳을 가장 예리하게 찌르고 들었다.
남편은 진해에서 다른 여자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 이 부인의 말이 옳다. 내가 6, 7천명 모이는 교회의 전도사가 되면 뭘 하고 신령한 말로 부흥회를 하고 다니면 뭘 하나 부부는 일신인데 남편도 회개시키지 못한 내가 어떻게 다른 영혼들을 주 앞에 인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낙심이 되고 부끄러웠다.
그녀는 그 날로부터 목적을 세워 남편이 자기에게 돌아오도록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을 회개시키되 순종하지 않거든 중풍이라도 들게 하여 회개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기도를 듣던 아이들이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핀잔을 주었다. “ 어머니, 어머니, 무슨 기도를 그렇게 하셔요. 돈이나 벌어 가지고 돌아오게 하시지 ” “아냐, 돈 벌어서는 안 돌아와 ” 이런 대화를 모자가 했지만 그 후 기도의 내용을 바꿨다.
남편이 그녀에게 돌아와 목사가 되게 해주십사하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100일을 정하고 그렇게 매일 밤 10시가 되면 2시간 동안 기도를 했다. 그러나 100일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다시 100일을 정하고 또 기도를 시작했다. 그래서 80여일이 지난 어는 날이었다.
아들들이 교회에 있는 그녀에게 와서 “어머니 저 지프차 한번 빌립시다.” “이렇게 눈이 평펑 내리는데 지프차는 무슨 지프차니?” “어머니, 특별히 전도해 올 사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저녁에 집에 와 보니 남편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있었다.
남편은 그 후 목사가 되었고 아들과 함께 광탄면에 가서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후에 거기에 교회건물이 들어섰다.
기도가 어떻게 하여 그 답을 끌어내게 되는지에 대해 우리는 그 메커니즘을 잘 모른다.
그러나 믿음이 거기에 관여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개척 교회를 세워 성공시켜 오면서 기도의 체험을 해온 그녀는 강한 신념이 있었기에 180여일 동안 기도를 계속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허 계 구 (상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