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부터 지팡이 진 노인까지 옛길 걸으며 시간여행
역사 사실에 기인한 도시재생, 운주당터 복원 등 촉구
“관광하는 기분이에요. 읍성은 알았는데, 이렇게 동성(東城)이 있었다는 생각은 안 해봤거든요.”
한글날인 9일 아침, 모처럼의 휴일 늦잠을 반납하고 150여명의 사람들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날은 사단법인 질토래비(이사장 문영택)가 동성과 돌하르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진행한 ‘동성, 돌하르방길(을 따라 가는 시간여행)’ 기행의 첫 순서였다.
어린 아이부터 지팡이를 진 어르신까지 제주 원도심 이야기에 제법 관심이 있는 이들이 삼삼오오 긴 행렬을 이루며 삼성혈에서 건입동 동자복, 만수사까지 2시간의 일정을 함께 했다.
제주성에 대한 첫 축조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태종실록에 ‘제주성’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로 미루어 1411년 이전에는 축조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555년 왜구의 침입을 받는 을묘왜변을 겪으면서 성내에 많은 물과 고지대 방어가 필요해졌고, 1565년 곽흘 목사가 기존 산지천 서쪽까지였던 성 경계를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동문이 건축됐다. 하지만 동성을 포함한 제주 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거의 소실돼 동성 담은 제주지방기상청과 남수각 인근 삼성로 일대에만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동행한 이들은 삼성혈에서 동문시장까지 이어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걸으며 끊임없이 감탄과 지탄을 반복해 내뱉었다.
특히 동성 담이 아직 남아있는 골목이, 동성에 대한 언급 없이 제주에는 있지도 않았던 ‘추억의 기찻길 골목’으로 명명된 데 대해 아쉬움을 토했다. 원 도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던 옛 공신정 터에 이르러서는, 제주 성을 무너뜨려온 것이 일본만은 아니라며 안타까워했다. 제주의 도심재생사업이 지역의 역사에 대한 경외 없이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걷는 내내 웃음을 감추지 않았던 아라초 김중흠 학생(6학년)은 “성 옛 길을 처음 걷는데 뭔가 새로운 기분”이라며 “제주성의 흔적이 더 많이 발굴되고 보전되기를 바라게 됐다”고 말했다.
장년의 딸의 손을 잡고 길에 나선 한 어르신은 “오랫동안 제주를 떠나 살다 내려왔는데, 어렴풋이 옛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고 촉촉한 눈빛을 내보였다.
행사를 기획한 문영택 이사장은 “제주 성, 특히 동성이 있던 자리는 산지천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뛰어난 역사성과 경관 성을 갖고 있지만 도민들에게조차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며 “무너진 동성 길을 표식으로 복원해 옛 길을 구현하고, 현재 발굴조사만 진행중인 운주당 터를 복원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