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문자
훈민정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후손들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야
일상서 외국어 무분별 사용 문제
행정기관부터 용어 정비·순화해야
‘바른 글’ 우리의 국격 높이는 길
내일 10월 9일은 572돌 한글날이다. 한글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민족이 세계에 자랑할 가장 뛰어난 문화이다. 1443년에 만들어지고 3년 뒤인 1446년에 반포된 한글은, 지구상의 모든 문자 가운데 ‘창제(創製)한 사람과 날짜’가 확실한 유일무이(唯一無二)의 글자이다.
게다가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밝혀져 있는 과학적인 언어임에랴.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문자’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한글의 우수성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총·균·쇠 저자)는 한글을 “가장 독창적이고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다.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1997)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기는 하지만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처럼 훌륭한 글자를 지은 세종임금은 참으로 위대한 분이다. 물론 한글은 집현전의 유능한 학자들과 머리를 맞대어, 숙의를 거듭하고 연구에 연구를 되풀이한 끝에 완성한 결정체(結晶體)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세종처럼 현명하고 용기 있는 군주가 아니었더라면, 유교와 모화(慕華)사상에 젖어있던 당시 상황에서 어찌 감히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마련할 엄두를 낼 수 있었겠는가. 만일 한글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땠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들 후대의 진복(眞福)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한글을 더욱 사랑하고 쓰기 좋게 다듬는 일이다. 한글의 위상을 높이고, 우리말을 아름답게 사용하여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욕설과 비속어를 삼가고, 외국어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 외국어와 외래어는 다르다. 외래어(外來語)란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말이기는 하되, 우리말에 파고들어 익숙하게 쓰여 지는 말이다. 이를테면 버스·트럭·라디오와 같은 명칭이다. 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버스는 ‘손님차’ 트럭은 ‘화물차’로 불렀었지만, 지금 와서 이를 다시 바꾸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상 ‘국어화’한 말이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외국어 특히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의 사용이다. 우선 행정기관에서부터 용어를 정비하고 순화했으면 싶다. 가장 못마땅한 게, 읍 면 동 사무소를 ‘센터’로 부르는 것이다. 느닷없이 웬 센터인가. 중국을 본 땄는가. 하지만 중국은 그들 나름대로 ‘중심(中心)’이라 쓰고 있다. 종전 행정부서의 하나인 계(係)는 ‘팀’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계장은 팀장이 된다. 어색하기 그지없다. 또 매뉴얼은 뭐고, 로드맵은 무얼 뜻하는가.
대기업의 상호를 보자. LG SK SKT KT KTX KT&G CJ GS 등등, 도대체 어느 나라 기업이고 무슨 업종의 회사인지 어리벙벙하다. 비슷비슷한 영문자가 뒤섞여서 구별하기도 힘들다. 영어약자를 쓰더라도, 한글과 병기(倂記)하는 방법도 있지 않겠는가.
제주시내 거리에서 외국어로 된 간판들을 흔히 본다. 여성 전용의 미장원은 영문으로 헤어숍, 헤어팜이고, 웬만한 호텔은 우리말 이름을 거의 붙이지 않는다. 아무리 국제화·세계화시대라고는 하지만, 일반인이 알아볼 수 있게끔 우리말로도 표현을 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크게 우려되던 일본어 잔재가 많이 사그라 들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고쳐진 말이 ‘벤또’가 도시락으로, ‘와리바시’가 나무젓가락으로, ‘사라’가 접시로 바뀐 것 등이다.
비단 이뿐이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외국어에, 우리말과 우리글이 시들어 가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말이 자칫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덮쳐온다. 남을 중상 모략하는 언어와 뒷담화도 근절됐으면 싶다.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글을 빛내야 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날을 제정한 의의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때다. ‘고운 말’ ‘바른 글’로, 우리들 삶의 질을 증진하고,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가일층 향상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