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道 남북 해빙기 적극적 역할 천명
‘제주형’ 사업 발굴해 체계적 추진
기존 감귤보내기보다 진화 기대
한약재 소재로 한 한의학 교류 제안
제주 ‘진피’ 북 ‘황기’ 효능 보완적
조합 시 평화 상징 관광상품 될 수도
남북 관계가 또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첫 정상회담 후 5월 다시 깜짝 재회를 하면서 잠시 경색되었던 국면을 풀어내더니 추석 즈음엔 3번째 정상회담이 열렸다. 불과 6개월도 안된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연내에 2차 북미회담과 뒤이은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예측되고 있다. 여기에서 도출되는 성과물 또한 메가톤급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바야흐로 남북 관계는 이제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춰 제주에서도 지자체 차원의 실질적인 교류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제주는 지난 남북 해빙기 때에도 감귤로 북과 오랜 기간 교류를 지속해 온 선례가 있다. 마침 민선 7기 제주도정은 어느 지역보다 적극적인 남북 교류를 천명하고 나섰다. 공약실천계획서에 의하면 “남북평화 기류에 맞춰 제주형 남북교류 협력 사업을 발굴 및 추진하고, 도민 공감대 형성을 바탕으로 정부의 대북정책 틀 내에서 체계적인 대북교류를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필자는 한라와 백두라는 상징성을 담보로 한 제주가 주도하는 진일보한 교류 사업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문 중에는 “남과 북은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라는 조항이 있다. 이러한 조항에도 부응하는 의료사업으로서 ‘남북 대표 한약재를 소재로 한 한의학 교류’는 어떨까.
한의학은 남한과 북한 공히 국가정체성을 지니는 전통의학으로 존속하고 있다. 다만 북에서는 한의학을 ‘고려의학’이라고 칭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제주의 대표 한약재로는 귤껍질인 진피(陳皮)가 있다. 북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약재이다. 여기에 대가 되는 북한의 대표적 약재라면 개마고원의 황기를 들 수 있다. 한 북한 출신 한의사에 의하면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약재로서 우리의 경우 제천지방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지만 개마고원 황기는 6~12년산으로 품질이 좋아 북한의 최고위층에게 주로 공급된다고 한다.
효능에 있어 진피는 기(氣)를 돌리는 이기약(理氣藥)에 속한다. 황기는 인삼과 같이 보기약(補氣藥)에 속해 기(氣)를 보하는 작용을 한다. 이기약 진피와 보기약 황기는 잘 어울려 서로 배합하면 기를 돌리면서 보하는 작용이 생긴다. 이처럼 제주의 아열대 한약재인 진피와 개마고원의 대표 한약재인 황기는 남북 교류만이 아니라 약의 효능을 높이는 데에도 좋은 궁합이 될 수 있다. 서로 조합하여 처방을 구성한다면 평화를 상징하는 관광 상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
제주의 감귤보내기 운동은 지난 1999년부터 12년 동안이나 유지된 바 있다. 다시 해빙기를 맞은 국면에서 4·3의 상생과 화해, 평화의 정신으로 남북 교류의 물꼬를 제주가 선도적으로 열어젖혔으면 좋겠다. 진피와 황기를 매개로 한 교류는 한의의료 분야의 교류인 만큼 기존의 감귤보내기 교류보다 한 단계 진화된 형태가 될 것이다. 단순 농산물 교류를 넘어선 의료적 차원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방적으로 보내는 것이 아닌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에 퍼주기 논란을 불식하고 보다 높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공히 국가정체성을 지니는 한의학이라는 데서도 의미가 크다. 외국에게는 우리가 하나의 민족임을 드러내는 상징성으로 인식될 것이다. 세미나 등 학술적 교류로서 시작한다면 정치적 부담도 없어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곧 있을 북측의 답방 시,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을 방문했듯이 한라산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평양 방문 시 우리는 북측으로부터 송이버섯 2t을 선물 받았다. 답례로 제주를 찾을 때 제주의 독보적인 약재인 진피를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겨우 진피인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서 묵힌 진피는 고부가가치 약재에 속한다. 오래 묵힌 진피는 아니지만 국내에는 유기농 재래귤 진피가 비교적 고가에 거래된다. 특히 진피가 가지는 습(濕)을 빼는 효능에 주목한다면 안성맞춤인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