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초딩, 꼰대, 노인충, 급식충, 틀딱충. 주변에서 특정 계층을 혐오하면서 부르는 말이다.
제발 우리 아이가 다닐 장애인 시설을 짓게 해달라고, 무릎 끊은 엄마의 모습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독하게 만들었는가.
중장년층을 비하하고, 군인을 비하하고,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을 비하하고, 가난한 사람을 비하하고. 그들에게 무슨 ~충이라고 표현하는 잘못된 시대이다. 이 시대를 사는 여러분은 행복한가.
남을 혐오 하는 것, 이것은 당신도 남이 혐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혐오하는 말과 글이 칼이 되는 시대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먼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다. 믿음이 없는 사회가 혐오를 키워가는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또 하나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다. 경제적 불평균, 어려운 이웃, 어려운 계층에 대한 배려 부족이 혐오를 키워가고 있다.경제적인 나눔이 필요하다. 또한 청년층에 대한 나눔도 필요하다. 어려운 계층에 대한 나눔이 절실하다.
장애인과의 나눔, 성별간의 나눔, 세대 간의 나눔, 잘사는 사람과 빈곤한 사람과의 나눔으로 혐오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시작점에 설 때가 됐다. 자신과 후대의 행복을 위해 포용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나와 다른 남 혹은 난민, 고향 사람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 우리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의 사고를 존중해야 한다.
혐오가 없는 포용의 시대를 살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봤다. 조례를 비롯한 각종 규정에 혐오적인 내용이 있는지를 살펴 개정해야 한다.
더불어 마음에서 쏟아나는 혐오를 줄여나가기 위해 남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승강기에서 다른 사람이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서로 부딪히면 미안하다는 말도 서로가 나누어야 한다. 작은 존중이 모아져 품격이 되고 혐오를 줄여나갈 수 있다.
마음이 폭발할 때 마다 자기의 마음을 뒤돌아보자. 혐오가 축소될수록 모두의 행복은 확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