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과 소통
이산가족 상봉과 소통
  • 강덕환 시인
  • 승인 2018.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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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소서 주고받는 우표없는 손편지
남북 혈육, 마음 담아 안부 전해
안간힘으로 편지 쓰는 모습에 ‘울컥’

몇 초만에 상대에 메시지 가는 세상
이산가족 소통, 지금 방식의 한계
속도감 높이는 다양한 방법 찾아야

 

북측 언니 리숙희 씨를 만난 남측 이후남 씨는 즉석에서 편지를 썼다. “우리 큰 언니 평생 동안 잘 모셔 정말 고맙네.” 북측 언니도 몸이 불편해 이번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촌 언니에게 편지를 남겼다. “언니야. 반세기 동안 혈육 소식을 몰라 하다가 북남 수뇌 배려로 이렇게 상봉이 마련돼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구나.”

남측의 오세영 시인도 북측 이종사촌 여동생에게 “이제 우리는 다시/헤어지지 말자/그때 그날처럼 아직도/그 자리에 서 있을 외가집 마당가/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다시 만나자.”고 시를 지어 전했고, 기자로도 활동했다던 북측 량차옥 시인도 “우리 집에 코스모스/담장 밑에 코스모스//빨간 꽃은 피었는데/우리 엄마 어데 가고//너만 홀로 피었느냐”는 시를 남측 자매들에게 남겼다.

마음을 담아 소식을 전하는데 아직도 소통의 방식으로 편지가 저렇게 쓰임새가 있다니.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거나 기억하기 위해서 안간힘으로 편지를 쓰고 전하는 모습에 울컥해진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마지막 일정이 진행되던 지난 8월 26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의 장면들이다. 그러나 우표를 붙이지 않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손편지들이다.

하필 그날,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에 서 있다가 빨간 우체통과 만났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우체통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편요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할까. 우표를 붙이지 않거나 요금이 부족하면 배달이 될까, 버려질까. 침 퉤퉤 발라 붙이던 우표를 봐본지도 오래다.

우표수집의 추억도 가물가물하다. 편지 답장을 기다리며 올렛길 어귀로 우체부의 기척을 마중하던 유년이 송두리째 사라진 요즘, 우체통의 발견은 반갑다기보다 차라리 서글픔이다.

고운 편지지를 골라 온갖 정성으로 편지를 쓰고,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벅벅 구기고, 마침내 ‘그럼 이만 총총’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숱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때론 눈물방울이 떨어져 흔적으로 남고, 곱게 물든 낙엽이 동봉되기도 했다. 군사우편 소인이 찍힌 우편물이라면 엄숙해졌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편지를 외면했을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편지지에 사연을 쓰고 곱게 접어 봉투에 담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이나 우편함을 찾는 번거로움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변했다.

어디 편지뿐이랴. 공중전화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를 휴대전화가 점령하였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 퓨리서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최고인 96%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보유한 성인 비율이 94%를 차지하면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보니 각종 SNS(교호 네트워크 서비스: Social Network Service)를 활용하면 된다. 그러다보니 여러 날을 거쳐야 전달되던 소식이 몇 초 만에 상대방에게 전해진다. 그것도 수 천, 수 만 명에게 동시에 도달한다. 4차 산업혁명이 실현되는 단계에 이르면 또 어떤 방식이 출현할 지 아무도 모른다.

예전이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연락과 소통의 방식들이다. 그럼에도 이산가족끼리의 소식 주고받기는 아직도 요원하다. 1988년 이후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상봉 신청자가 13만 여명이었는데 절반 정도는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70년 세월을 기다렸는데 더 이상 만남이 길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속도감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적인 생사확인을 통해 상시적 만남의 장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편지라도 마음대로 교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숨통이 트이랴.

비단 이번 상봉단에서 “같이 살자”고 염원했던 최고령 강정옥 할머니가 제주 출신이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4년 전 이산가족 상봉 시에도 4·3 당시 행방불명된 제주출신 리종성 할아버지를 극적으로 만난 일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적 차원의 한민족적 과제이지만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도 절절할 수밖에 없고 하루속히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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