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행정, 더디 가도 ‘여론 경청’ 필수
개발행정, 더디 가도 ‘여론 경청’ 필수
  • 백승주 C&C국토개발연구소장
  • 승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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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민권의식 신장으로
이해관계인 권리보호 관심사 부각
사업계획 구체화 후 여론수렴 일반적

제주 현실 행정선 개발독재시대 관례
비밀주의·밀어붙이기 ‘이중성’ 다반사
사업 ‘오락가락’ 계획행정 있기나 한지

 

우리나라에서 개발행정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산업화 사회가 본격 도래해 공장부지 조성 또는 정부 주도의 공공사업을 추진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는 행정이 사유재산을 강제 수용해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생소했다. 더욱이 획일성을 강조하는 군사문화가 행정을 압도했던 당시로서는 이해관계인의 의견 청취절차를 거치는 것은 더욱 쓸데없는 허드렛일로 비쳐졌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민권의식이 크게 신장되면서부터다. 이해관계인의 권리보호 문제가 개발행정의 주된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절차적 민주주의 실현 차원에서 ‘행정절차법’이 새로 만들어졌고, 개발관련법의 제·개정을 통해 행정이 지켜져야 할 이해관계인 보호규정들이 신설되었다.

그 결과 개발행정 영역에서도 특정개발계획의 초안 또는 그 협의안 등 구체적 개발안이 마련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모르되, 계획안이 구체화 된 이후에는 행정이 그것을 당연히 법령에 따라 공개해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가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공개가 쉽지 않은 특수한 경우는 제외되지만, 개발사업의 공개추진 원칙은 당연한 것이 되었으며, 절차상 국민의 권리보호 내지 구제수단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행정 현실에서는 간혹 모든 ‘관행과 관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허세(虛勢)를 볼 수 있다. 시대변화상에 반하여 행정이 간혹 타성적으로 개발독재시대의 ‘영광스런 관례’를 존중하는(?) 우(愚)를 범하는 있는 사례가 상존한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그간의 개발사업들의 추진경과에 비추어서, 외관상 ‘관례 존중심’ 행정이 다른 시·도의 그것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갖게 한다. 십중팔구가 비밀주의로 치장(治粧)된듯하고, 절차 대신 ‘밀어 붙이는 것’을 원칙적 능사(能事)로 여기는 듯하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와 많이 달라 보인다. 공조직 못지않게 정보접근능력 있는 국민의 의사를 기꺼이 배려하고 존중하는 행정행태가 일반화되는 추세다. 이런 사실은 다음의 사례를 통해 음미해 볼 수도 있다.

첫째, 필자가 늘 강의에 예시로 들곤 했었던 사례다. 일본 도쿄도(都)의 중앙에 위치한 ‘미나토구록본기’ 지역에 노후화된 주택단지를 헐고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현재 이곳은 도쿄의 대표적 주거·문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1986년 도쿄도가 재개발 유도 지역으로 지정한 뒤 10년 정도 경과한 1995년에야 공사가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이 사업 추진에 불만을 품은 지주(地主) 500명을 설득하기 위해 행정은 사업지역 지정 전후 14년간을 공을 들였다. 행정은 이 기간 중 주민과의 신뢰구축을 위해 장장 1000번이 넘는 간담회를 개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한 일간지 미국 특파원이 소개한 미국 워싱턴 소재 흑인 빈민가지역인 와프(Wharf)지역 개발 사례다. 최근 이곳에는 세계적 호텔을 비롯해 아파트·주상복합단지 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업도 행정이 무려 20년 동안 이해관계인을 설득하는데 공들인 결과 성공한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행정은 5년을 주변 지역공동체와의 연계성 등 5개의 목표를 설정하는데 사용했다. 나머지 15년은 지방정부 주도하에 연방정부, 개발업자, 주민 등이 함께 집값 상승 및 재원 마련 등 사업에 따른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사용했다. 이를 위해 총 600여 회의 미팅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제주의 상황은 어떤가? 행정 당국은 말로는 ‘보편타당한 룰이 지배되고 민주적이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업추진에 있어서는 이와 달리 ‘비밀주의’와 ‘밀어붙이기’를 버리지 못하는 소위 ‘개발행정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제주도는 최근 비자림로 삼나무를 베어낸 후 4차선 만들려다 웃음거리 되자 간접화법으로 생태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제주에 계획행정이 있기나 한 건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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