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의무, 국가 유지위한 기본 임무
‘거부’ 잘못된 국가권력에 저항 인상
‘양심’이란 말에 국민 거부감도 상당
군 입대·전역자들은 ‘비양심적’인가
종교적 믿음이 병역 회피 이유라면
‘소신에 의한 병역기피’ 용어가 타당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기본적 의무로, 납세의 의무·교육의 의무·근로의 의무·공공복리의 적합의무·환경보전의 의무와 함께 국방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헌법 제39조 ①).
의무(義務)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그래서 ‘마땅히 해야 할일’이다. 이 중에도 ‘기본적’의무는 ‘국가의 질서와 존립을 유지하고, 사회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국민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임무이다.
그럼에도 이에 반(反)하는 ‘병역 거부(拒否)’라는 말이 나온다. 잘못된 국가권력에 대(對)하는 ‘저항권’으로 오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저항권(抵抗權)이란 ‘국가권력이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정도로 중대한 침해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이를 구제할 방도가 없을 경우에 국민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를 이른다. 때문에 ‘병역거부’라는 단어는 ‘저항권’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비교할 여지조차 없는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병역거부, 그것도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왜 자주 등장하는 것인가. 더욱이 병역 거부자를 ‘양심적’이라고 한다면, 군대를 가거나 전역한 사람들은 모두 ‘비양심적’이라는 말인가. 그런데 병역거부라는 말은 법률용어도 아니다. 우리 병역법은 입영기피·병역기피라는 소극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당연하다는 듯 ‘양심적 거부’라는 말이 쓰이고 있음은 무슨 까닭인가.
우선은 특정종교의 신도에 의해서이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거부자의 대부분은 이 특정종교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심을 내세워, 병역의 의무를 지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종교인들에 대해 무작정 비난을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는 ‘순교’마저도 불사하는 사람들이 종교인이다. 종교인에게 순교(殉敎)는 거룩하고 숭고한 최상의 영광스런 행위로 통한다. 그러므로 이들을 단순히 법률위반으로 단죄(斷罪)함은 상당한 문제가 있는 판결로 보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다음은 헌법에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음을 들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19조). 여기에서의 자유는 헌법상의 권리로서, 양심에 거리끼는 외부의 강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國防)의 의무를 개인의 어떤 양심에 의하여 거부한다는 것은 우리 원래의 정서에 맞지 않는, 무책임한 일이다. 더구나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안보상황에서 ‘양심적 거부’운운하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규정과 더불어 종교인 특유의 ‘종교적 믿음’이 병역을 피(避)하게끔 만드는 요인이라면, 그냥 ‘소신에 의한 병역기피’ 또는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로 묘사하면 되지 않을까. 아무리 양심의 자유가 당연한 권리라 하더라도, 우리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양심’의 뜻은 그저 ‘어질고 착하고 그래서 선량(善良)한 마음(心)’일 뿐이다.
이후로 다시는 ‘병역거부’라는 낱말 앞에 ‘양심적’이라는 ‘아까운’말은 넣지 말자. 현역과 제대군인은 물론이고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대한민국 국민 의 사기진작(士氣振作)을 위해서도, 당국 특히 언론에서부터 이를 실천했으면 한다. 이유야 여하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국민들이 대다수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체(代替)복무제’. 이를 시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반대하지 않는다. 지혜를 모은다면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합리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납득할 수 있는 공평하고 균형 있는 제도의 도입을 기대하는 바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용어부터, 다른 말로 바꾸는 게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