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주시 야외공연장

비공개 타당성 검토·내용도 부실 결국 유보
소규모 공연장 수요 많은 문화현장과 괴리
시민을 행정행위 객체로 보는 구태 지적도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인프라를 구축할 때, 행정은 어느 시점에서 도민과 의견을 나누어야 할까.
제주시 관계자는 지난 2월, 본 지의 용역 보고서 공개 요청에 “미리 얘기를 꺼냈다가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며 “내부적으로 추진 여부를 결정한 뒤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1000억 원대 ‘글로벌 전천후 복합 야외공연장 조성 사업’을 추진해오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최근 유보를 결정한 제주시는 이렇게 ‘밀실 행정’이라는 비판을 만들어갔다.
야외공연장 이야기가 문화계에서 들린 건 지난해 가을이다. 2000석 규모의 노천 공연장을 만들어 대규모 공연을 유치하고 제주국제관악제에 둥지를 만들어주려 한다는 말들이 설왕설래했다. 얼마 뒤 도내 일부 예술단체에 공연장 조성과 관련한 전문가 의식조사가 이뤄지면서 소문은 기정사실로 여겨졌고, 도민 대상 보고회 없이 용역 최종보고서는 그 해 12월 제주시에 납품됐다. 그리고 지난 2월에는 고경실 전 제주시장이 문화관광체육부와 기획재정부 등 중앙 부처를 방문한 일정에서 야외공연장 예산 문제를 논의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뜬소문 같던 공연장 조성 계획은 곧 수면 위로 떠오를 듯 했다. 하지만 제주시는 언론의 취재에 묵묵부답하고, 용역 안 정보공개청구에도 비공개로 대응했다. 최근 열린 제주도의회 임시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회의에서는 제주시가 상임위에도 사전 공식 보고를 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이처럼 용역 완료 뒤에도 반년 가량 제주시 내부에서만 공유되던 야외공연장 조성 계획은 고 전 시장의 퇴임을 앞둔 지난 6월 말에야 비로소 공개됐다.
용역 보고서에는 공연장 조성에 800억 원에서 1030억 원 사이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제시됐다. 한라도서관과 제주아트센터를 잇는 남측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전천후 야외공연장을 만들어 국제자유도시 제주의 위상을 높이고 격조 있는 대형 공연을 유치하겠다는 비전도 함께였다.
제주시는 예산을 전액 국비로 추진하고, 인허가 절차 이행과 공사까지 장기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야외공연장 추진에 당장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언론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그동안 비공개로 추진한 것과 관련해서는 “내부적으로 추진 타당성을 심도 있게 검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8일 도의회 임시회 문광위 주요 업무보고에서 문경복 제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야외공연장 연중 사용 계획을 묻는 의원 질의에 마땅한 답을 건네지 못 했다. 제주시가 지역의 입장에서 공연장 조성을 고민했는가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결국 문 국장이 ‘원점 재검토’입장을 밝히면서 사업은 유보됐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제주시 문화행정이 도민들을 어떤 위치에서 바라보는 지를 여실이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 관계자들은 “대형 야외공연장의 필요 여부를 떠나 제주시가 보여준 행태는 시민을 행정 행위의 객체로만 바라본 것에 다름 아니”라며 “오히려 실제 문화 현장에서는 200~300석 규모의 공연장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씁쓸함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