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물쓰레기·사람 배변 동시 해결
물 절약·거름생산·마지막엔 고기로
장마와 태풍 쁘라삐룬이 겹치면서 엄청난 비를 뿌렸다. 엉또폭포의 위용이 드러났고, 도내 하천들은 유량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강으로 변해버렸다. 몇 군데를 제외하고 제주의 하천은 대부분 평상시 물이 흐르거나 고이지 않는 건천이다.
하천이 범람할 정도로 폭우가 내리더라도, 금방 바다로 흘러가 버린다. 한라산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이동경로가 짧고, 경사도가 육지부의 강처럼 완만하지 않고 급경사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제주 사람들은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일부 하천 유역이나 용천수가 발달한 곳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했다.
제주 사람들에겐 물을 귀하게 이용하고, 물 한 방울이라도 아끼고자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과학적 사고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허벅’·‘촘항’·용천수·저수지 등을 접할 때마다 악착같이 살았던 시기가 주마등처럼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수돗물 대신에 삼다수를 펑펑 쓰다 보니, 과소비를 배척했던 제주정신을 강조하기가 쉽지 않다.
‘삼무정신’·‘조냥정신’·‘수눌음정신’·‘해민정신’ 등은 제주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제주의 정신이다. 그것은 자연재해를 최소화하고 한정된 자원을 극복하면서 터득한 근검절약과 상부상조로 이루어낸 문화유산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지난 6월말에 제주대학교에서 열린 제주학회창립 40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전국학술대회에서 제주대 해양과학연구소 이영돈 교수가 제시한 ‘도통문화’의 정신이 그것이다.
그는 ‘인간 → 돼지 → 도통 → 유기농 → 자연순환’으로 이어지는 도통문화의 가치를 강조했다. 제주의 ‘돗통시’ 문화는 실로 대단하다. 우선, 음식물 쓰레기와 사람의 배설물을 해결해주었다. 이로 인하여 상당한 양의 물을 아꼈었다.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다.
또한 척박한 땅에 천연 거름을 생산해내는 전진기지가 돗통시였다. 그리고 돗통시에서 자란 돼지는 집안의 경조사에 음식으로 이용됐다. 현대 과학이 들어오기 전에 농사일과 일상생활로 발생되는 폐기물을 해결해줌과 동시에 자원 순환적 관점에서 보면 사라져서는 안 될 전통과학문화였다.
제주사회가 부유해지고 있을까. 사람의 힘에 의해 의존했던 산업이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기계화, 자동화되면서 한정된 자원이 순환하기에 버거울 정도로 변하고 있다. 화학비료·농약·항생제·금속 등의 과다, 생활하수와 축산 폐수의 증가 등으로 제주의 바다 환경이 치명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1970년대에 비해 해조류 자연 생산이 80% 정도로 줄어들었으며, 일부 자원은 자취를 감출 정도다. 돗통시를 포기하면서 얻게 산물이기도 하다. 지난 6월 26일 제주포럼에서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의 랄프 제링거 환경보전국장이 지적한 것처럼 시민참여중심의 자원순환시스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도통문화가 제주의 환경문제를 극복하는데 좋은 시금석이 될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이 스마트폰 하나면 다 해결되는 시대에 도통문화를 강조하는 것이 무의미할지 모르나, 전통적 과학 방식이 제주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지난날의 기여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현대 과학이 돗통시의 원형을 사라지는데 기여한 만큼, 돗통시에 스며있는 제주정신을 살리는 것 또한 과학의 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과학은 세상을 이끄는 유효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민선 7기를 맞아 그럴듯한 과학의 힘으로 제주의 원형을 새롭게 포장하고 디자인하려고 할 이 때에, 진짜 과학의 힘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엉또폭포가 비올 때만 찾는 명소였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계절에 따라 품어내는 향기가 그 곳에 늘 숨어 있다. 제주사람들이 생태적으로 터득한 지혜로운 과학성을 바탕으로 도통문화의 정신이 새로운 대안 운동으로 지속적으로 퍼져 나아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