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제주도 목마장의 변천(6)
■ 산마장
(2)목장조직
산마장에는 산마감목관 밑에 마감과 군두, 군부, 목자를 배치하였는데 정조 18년에 암말 100필과 수마 15필로 패(牌)를 편성하여 매 패에 목자 10명을 배치하여 관리하였다.
(3) 목장실태와 운영
정조 16년 제주삼읍지에 군두·목자가 침장에 118명, 녹산장과 상장을 합해서 42명, 사육마필은 1573필로 기록되어있다. 수처(못)는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교래리 상·하동을 통과하는 하천과 성불오름쪽 하천에는 여러 곳에 물이 항상 있고, 여문영아리오름과 물영아리오름(수령악) 중심에 있는 <신물>은 수백 여필의 말들이 먹을 수 있는 물이 있어 지금도 마을 공동목장의 말과 소들이 먹고 있다.
목사가 말을 일정한 곳에 모아 점검하는 행사때 삼읍의 장정 등 많은 군민이 7~8일간 동원되어 생업인 농사일에 피해와 고통이 너무 컸다. 또한 산목장을 경작하는 사람들에게 세금(場稅穀)을 거두어 마감, 목자 등의 급료 등에 사용하였으나 그 세금이 과중하고 피해가 있어 정조 18년(1794) 어사 심낙수(沈樂洙)의 산마목장 신정절목(山馬牧場 新定節目) 요지는 금경구와 허경구로 나누고 여기서 받은 세금을 장세고(場稅庫)에 보관하여 공용으로 쓰게 함으로써 목장보호와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목장경계를 올린 것이다.
산장목장 신정절목의 금경절목은 산목장 3곳(침장, 녹산장, 상장)의 범위를 도형으로 그렸고 금경지와 경작지를 구분하였고 새로운 경작은 윤작(2년1회)을 하였고 세미(稅米)는 풍년, 평년, 흉년에 따라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수세구처절목(收稅區處節目)은 세미를 징수하는 구획처에 대한 것으로써 매년 해당 마장의 감목관이 징수하도록 하였으며 산마장의 경우는 세미를 목자 184명에게 나누어 주고 그 일부를 창고에 남겨두었다가 감목관 관용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예하미분급절목(例下米分給節目)에는 예하미를 감마감이 해당 목장의 목자들을 거느리고 각 고을이나 영문에 모여 호명하고 나눠 주었다. 그리고 각 고을 세미는 좌수가 주관하여 나눠주었다.
해당 패에서 목자의 성명을 쓰고 말의 나이, 모색(털색) 등을 기록한 마적을 만들도록 했다.
산마장은 암말 1578필, 수말 274필, 합계 1852필이었고 군목(群牧)은 184명(산장에는 목자 1명당 10필씩), 여마 12필이었고 제 1~19패(牌, 1패는 100필 사육)로 구분 사육하였다. 이상과 같이 산장의 규모, 경작구역과 금경구역을 엄격히 구분하였고, 마적관리방법 등을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목장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산마장은 10소장(전체의 소장)과 비교할 때 매우 독특한 점이 있었다. 즉, 감목관을 수령(현감)이 겸한 데 비해, 산마장은 토착인으로 조직되었고 감목과 또한 목마를 전통적으로 해 온 김만일 일가가 관장하여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인데, 이로써 말 사육기술의 전수가 용이하였고 산지에 능률적으로 적응할 수 있어서 국내외에 유명한 양질의 산마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산마장의 마필수는 설치된 지 10년 만에 1000여 필에 달하였는데, 정조 16년에 1572필, 철종 11년에 1037필에 이르렀다. 산마(山馬)는 품질이 우수하여 초기부터 높이 평가되어 왔는데, 이 山馬들은 御乘馬로는 물론 신하들에게도 분배되었고, 명나라에도 진상되었다고 한다.
현재 조선시대 산마장은 잘 조성된 초지와 축사가 있는 제동목장( 녹산장과 상장), 한국마사회 경주마육성목장(상장), 태흥목장(녹산장), 교래공동목장(침장), 수망공동목장(녹산장), 가시리공동목장(갑마장), 토산공동목장(녹산장)이 있고, 침장에는 대원·대경목장에 제주마 200여 필 그리고 제주·탐라·서진승마장 등에는 제주산마·제주마 500여 필이 있어 관광객들이 승마장에서 Well-being 승마를 즐기고 있다.
제주도는 산굼부리(山仇音夫里)와 2소장의 검은오름 등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29-3 (4)산장구마에서 계속)
장 덕 지 교수 (제주산업정보대학 애완동물관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