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했지만 역사가 외면한 여성들
존재 했지만 역사가 외면한 여성들
  • 서인희 판화작가
  • 승인 2018.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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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선물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굵직한 세계사 사건 속 ‘활약’
그럼에도 역사책에서 여성들 누락

남성 역사가들의 편협한 인식 때문
한국 지금도 성차별 존재
보완적 존재 인식으로 양성평등

 

제주를 관통할 것이라던 태풍 ‘쁘라삐룬’이 무사히 제주를 비껴갔지만 장마의 영향인지 가는 비는 계속 내린다. 늦은 시간 갤러리에 도착해보니 노란 방수비닐로 포장된 택배 하나가 작업실 문 앞 하얀 벤치위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용물 표시에 ‘책’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안무가이시며 현재 서울무용영화제 집행위원장이시기도 한 정 교수님이 보내신 거였다. 얼마 전 “영화 관련 제주사람을 만나 갑자기 보고 싶어 전화 했다”며 오랜만에 그간의 소식도 듣고 수다도 떨었었는데, 바쁜 와중에 이런 것까지 챙겨 주셨다. 몇 해 전 여름 내 집에 머물 때 “재미는 없을 거야” 하시며 ‘정의숙 전미숙 안은미의 춤’이란 제목의 책 한권을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사뿐사뿐 방으로 걸어 들어가던 모습이 선하다.

‘춤’의 전문적 지식이나 조예가 없던 내게 조금이나마 무용에 대한 지식을 넣어준 고마운 책 이었다. 정 교수님도 유수암에 머무는 동안 두툼한 한권의 책을 읽으셨다. “내용이 너무 좋아 두고 가고 싶지만…” 소녀 같은 미소를 띠시며 책과의 사연을 얘기해 주시더니 몇 주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전 ‘월든’이 유수암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번에 무슨 책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포장지를 뜯었다. 노란비닐포장지 속에 감춰졌던 또 하나의 선물은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였다.

인류 최초로 우주에 간 사람은 ‘유리 가가린’이다. 그렇다면 최초로 우주에 간 여성은 누구일까?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란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처럼 역사 속에서는 누군가의 어머니·아내·딸로만 기록되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책에서는 역사책에서조차 누락되어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들의 이름을 개괄적으로 다뤄진다. 기독교의 탄생·십자군전쟁·프랑스 혁명·세계대전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서술해 가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몰랐던 어떤 여성들이 중요 사건에 개입하고 있었는지를 쉽고 흥미롭게 다룬 책이다.

남자들이 그간 여성들을 어떻게 폄하하고 그들의 업적을 깎아내렸는지도 알 수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의 편협한 인식 때문에 우리가 놓친 역사 속 여성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후 한국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 남성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워진 여성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필자를 비롯한 지금의 여성들이 이만큼 혜택을 누리게 된 것도 그들의 눈물과 한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마음이 숙연해진다.

자신을 가둔 그 시대적 현실과 당당하게 맞선 여성들은 생각 외로 많았다.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왜 성별이 중요 했을까?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확산되고 있는 21세기에 아직도 성차별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럼 양성평등은 무엇일까?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여 똑같은 권리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남성과 여성과 차이를 찾아보라면 남자는 정자의 Y염색체를 여자는 X염색체를 지녔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물학적 차이와 생식 활동이 다른 것을 제외하면 단지 같은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할 따름이다.

흔히 사람들은 모든 일이 일어나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 자체는 사회 정의 발현보다는 사회 집단을 대상으로 한, 명목적 가치에 불과하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남성과 여성은 상호 보완적 존재이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간 존중을 바탕으로 차별적 발언을 자제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사회는 유교 지향적 문화가 유지되고 있어서 성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유교에도 ‘공자(孔子)의 서(恕·내 마음을 헤아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가 있다.

답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를 공감하며 같이 살아가는 자세다. 남녀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식하면서 보완적 존재로 살아가며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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