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있어서 모작(模作)과 위작(僞作)은 남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드는, ‘따라하기’라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내용은 엄연히 다르다.
모작은 미술가들의 학습법, 즉 화가수업의 한 방법이었고 모사(模寫)를 통한 미술학습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수십 번씩 모사를 거듭하며 배움의 길에 정진했던 화가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조각의 거장 미켈란젤로나 사실주의의 거장 쿠르베, 인상파 화가 마네, 그리고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나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많은 화가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의 세계를 탐색해 나갔던 것이다.
'거짓' 을 '진짜' 처럼 만들어
그들은 대가들의 작품 세계로부터 받은 감동을 자신만의 영감으로 재해석해 자신의 화법과 색깔을 통해 풀어나갔다. 그러니까 원작을 다양한 방법으로 모사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양식의 예술을 창조했던 것이다.
반면 위작은 ‘거짓’을 ‘진짜’처럼 만드는 일을 말한다. 한마디로 위조(僞造)요 가짜며 사기(詐欺)인 것이다. 미술에서의 위작의 역사는 미술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말할 만큼 오래되었다. 그리스 시대의 미술가들은 팔리지 않는 동료나 제자의 작품에 자신의 서명을 기입하여 도와주었다는 위작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완전무결한 가짜와 위작 미술품들이 세계 각지의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에서 진짜 행세를 하고 있는 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국제 미술사회의 관측이기도 하다.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을 새삼 들먹일 것도 없이, 정말 ‘진짜 같은 가짜’는 시장질서를 무너뜨리고 진짜까지 도태시킬 수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최근 진위를 놓고 논란이 돼왔던 이중섭과 박수근 그림 58점이 검찰 수사 결과 모두 가짜라는 판정이 나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미술계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작품으로 여겨져 온 그림들이 무더기로 가짜 판정을 받았으니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 이중섭 그림은 8할이 가짜, 박수근은 4할이 가짜라는 말이 나돌던 터다. 그런 그림들에 검찰이 국내 최고의 전문가 16명의 감정을 거쳐 내린 결론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이런 위작으로 보면, 우리 나라 고미술상과 수집가 사회에 나돌고 있는 가짜 유물과 위작 미술품은 삼국시대의 토기로부터 불상, 고려자기, 조선시대의 서화와 각종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침범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통하고 있는 것 중 6∼7할 혹은 그 이상이 가짜라고 하며, 심한 경우 천경자의 ‘미인도’처럼 작가는 가짜라고 하는 데 이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짜라고 우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번 사건의 불똥은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에도 튀는 것 같다. 전문가들은 이중섭미술관에 기증된 이중섭 그림들도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어 그 진위 여부를 가려내는 것도 미술관의 공신력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중섭미술관' 에도 불똥
한 월간지 보도에 따르면 미술품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의 대표였던 이호재 씨가 2003년 3월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 기증한 8점의 이중섭 작품 가운데 ‘사슴’ ‘매화’ ‘연과 아이’ 등 세 작품과 이 미술관에 기증한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의 여인’도 위작이라는 것이다. 이 미술관 관계자는 “기증 당시에는 (위작 논란을) 몰랐다가 나중에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며 “이 중 일부는 전시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처럼 가짜가 횡행하는 것이 오직 돈 때문임은 더 말이 필요 없다. 이중섭이나 박수근의 그림들은 한 점에 수 억대에서 수 십억 원을 호가하므로 잘만 하면(?) 일확천금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은 한국 현대미술 사상 최고의 가짜 소동으로 기록될 듯 하다. 차제에 우리도 선진 외국처럼 공인 감정기구를 만들어 소모적인 미술품 위작 논쟁을 잠재워야 하리라 본다.
프랑스의 경우 정부 인증 자격고시를 통과한 전문 경매사와 국립 전문감정연맹이 감정 후 보증서를 발급하고 있고, 미국도 감정사협회를 두고 감정 업무를 맡도록 하고 있음은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미술품 감정기구와 감정 전문가 양성에 관심을 갖되 민간이 아닌 정부가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김 원 민 (편집국장ㆍ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