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폭력 속에 희생됐음에도 조명받지 못했던 국제사회 속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고, 4·3 당시 죽음을 직면했던 여성들의 인식을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면서 공권력에 무너진 인권의 가치와 새로운 연대의 장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은 제주포럼 마지막 날인 28일 오후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삼다홀에서 ‘국가폭력, 여성 그리고 제주 4·3’ 세션을 개최했다.
이날 세션은 허영성 제주4·3연구소장이 좌장을 맡아 사스키아 위어링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교수가 ‘1965년 10월 1일 이후 인도네시아 선전 운동의 핵심으로 제노사이드를 부추긴 성적 비방’을 주제로 발표했다.
또 아키바야시 고즈에 일본 도시샤 대학 교수는 ‘평화를 위한 국제 여성 연대 : 군사폭력을 반대하는 오키나와 여성행동모임’,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는 ‘국가폭력과 여성 : 죽음 정치의 장으로서의 4·3’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권귀숙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연구원이 토론에 나섰다.
김은실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채 무차별 학살과 폭력이 수행된 4·3의 공간은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 죽음, 죽음을 모두에게 전시하는 공포의 권력이 작동하고 있었다”며 “여성들은 통치의 메카니즘으로 사용하는 죽음정치에서 남편이나 아버지를 대신해 죽거나, 성폭력을 당해 국가폭력 주체들에 의해 모욕되고 ‘아무것도 아님’이 돼 공적영역에서 사라져 버린 것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들은 죽음정치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정치의 구성적 내부이고, 생존하고 공동체를 돌보고 모성을 실천하는 것에 의해 죽음정치에 도전하고 전복하는 힘이 되고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면서 “충분의 논의를 전개시키지 못했지만 4·3 이후 모성이라는 것이 죽음정치에 도전하는 힘의 출처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70년간 공동체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구축해온 여성들에게 전쟁과 유사했던 4·3과정에서의 폭력의 기억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해야하는지, 그리고 그 기억들은 누구와 공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귀숙 연구원은 “홀어멍은 무서웠던 기억, 억울했던 감정, 애가 타버린 슬픔 등을 몸에 새겨둔다고 한다”며 “그동안 제주도민들은 진상규명에 매진하느라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상대적으로 도외시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세션을 통해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폭력이 되풀지되지 않기 위해 인권과 평화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했다”며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연구와 평화연대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