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천문학적’
정부·농민·지역사회 힘 모으면 가능
주말 교외를 다녀올 때쯤이면 여기가 제주도가 맞나 하고 의구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마을이고 동네 어귀에는 차량으로 뒤덮여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거리엔 차량이 밀린다. 농촌마을 깊숙이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회색 콘크리트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난개발의 양상마저 보인다.
개발이 늘면서 농지는 급격히 줄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8년 지적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제주도 전체에서 마라도 면적의 87배에 이르는 농경지역과 65배가 넘는 녹지지역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농지가 훼손되고 난개발에 노출되면서 제주농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중요 농업유산인 ‘흑룡만리’ 제주 밭담도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러다간 농촌경관은 물론 제주다움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며 제주농촌으로 여행을 오는 관광객들도 제주다움을 잃어 가는 현실에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농업과 농촌의의 공익적 가치는 엄청나다. 2004년 농촌진흥청 연구에 따르면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의 경제적 가치는 환경보전·문화경관·식량안보·농촌 활력화 등 83조원 수준이다. 이를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109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2012년 고려대 양승룡 교수팀의 ‘농업·농촌의 가치 평가’에서도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86조원을 넘는 것으로 보고됐다. 거기에 임업의 75조원 가치를 더하면 농업·농촌의 가치는 162조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 같이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주목을 받으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촌, 건강하고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청정 제주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우선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갖고, 농업인에 대한 공공직불금 확대는 물론 청정농촌을 지키기 위한 조례제정 등 정책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과감한 농업·농촌지원 정책이 없으면 아름다운 자연경관 보호도 농촌공동체 유지도 힘들다. 독일 바이에른 주정부의 경우 농업정책의 기본 목표는 농업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 문화경관을 유지·보전이다. 또한 목표달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농업인을 위해 60여 종류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아무리 인구가 늘고 일정 규모의 도시공간에 대한 수요가 있어도 경관을 해치는 난개발은 막아야 한다. 선보전 후개발의 계획적 접근이 중요한 이유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강조될수록 깨끗한 농촌에 대한 농업인의 역할도 더 커지게 된다. 농지나 목초지가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가시덤불이 우거진 황무지로 변한다. 또한 과도한 농약을 사용하거나 폐비닐, 축산 폐수 등을 방치하면 농업·농촌의 가치는 지킬 수 없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유지하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데 정부나 외부에 맡겨둘 수만은 없다.
국토의 정원사는 역시 농업인이다. 독일의 경우도 농업인들의 공공직불금을 받는 대신 지구온난화 방지, 수질·토양보전, 생태계 다양성 유지 등 경관을 관리하고 환경을 보전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고 한다.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벌칙도 부과된다. 내 농장, 우리 마을부터 청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범사회적 활동도 필요하다. 65세 이상 고령농가가 절반에 이르는 농촌현실을 감안, 농업인단체를 포함한 사회단체가 함께 나서 ‘청정제주농촌가꾸기 도민연대’ 등을 조직하고 ‘아름다운 제주농촌 가꾸기 운동’ 등을 범도민 운동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쓰레기와 폐비닐이 날리고 축산폐수 악취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 풍경에 눈살을 찌푸리며 걷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제주가 아니다. 시간과 노력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누구나 찾고 싶고 쉬고 싶은 아름답고 깨끗한 청정 제주농촌을 도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