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지사 선거 네거티브 일관
투표 전에 사실 검증은 한계
고소·고발 난무 후유증 클 듯
유권자 판단 흐리게 하는 적폐
선거 후에도 추적 책임 물어야
대표사례 엮어 교육자료 활용도
6·13지방선거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공식선거운동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후보들 발걸음이 더욱 바빠졌다. 후보들은 갖가지 색 점퍼를 입고 지역 곳곳을 누비며 막바지 표심 잡기에 한창이다. 아침 출근길 차량을 향해 절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세월이 가도 선거전 행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선거 때 변함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흑색선전이다. 근거가 애매한 공격으로 상대 후보를 흠집 내는 행위가 비일비재하다. 흑색선전은 악성 네거티브다. 짧은 선거기간 중 검증할 수 없는 점을 노린 야비한 공격이다. 안타까운 점은 많은 유권자들이 그런 흑색선전에 솔깃해 한다는 것이다.
6·13지방선거 제주도지사 선거 과정은 시종일관 네거티브전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양강(兩强)인 원희룡·문대림 후보 진영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원 후보 측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문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비롯해 석사학위 논문 표절, ‘유리의 성 주식’ 백지신탁 회피, 부동산 개발업체 임원 취업, 골프장 명예 회원권 수수 등의 문제를 잇따라 제기했다.
문 후보 측도 공무원을 동원한 관권선거, 도지사 재직 시 회전문 인사와 측근 비리 의혹, 원 후보 모친의 부동산 거래에 따른 담보대출 특혜 의혹, 종합휴양지 ‘비오토피아’ 특별회원 의혹 등을 제기하며 공세를 폈다.
원 후보는 이에 “여러 의혹들에 대해 공개 검증의 기회를 갖자”고 공식 제안했지만 문 후보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 문 후보는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사법기관인 검찰에 고발했다”며 공개검증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 후보 측이 제기한 의혹 중에는 ‘아니면 말고’ 식 흑색선전도 있을 법하지만 적어도 투표 전에는 이를 밝힐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번 제주지사 선거는 사상 최악이 될 듯하다. 교수 사회가 걱정할 정도다. 도내 4개 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진실과 정의를 위한 제주교수네트워크’(진교넷)는 지난달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비전과 정책은 보이지 않고, 인물과 도덕성 검증이라는 미명하에 의혹 제기와 네거티브 전략만 난무하고 있다. 자극적인 네거티브가 이어지면서 정치 혐오와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며 “선거가 끝난 뒤 도민 행복을 담보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진교넷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고 흑색선전과 고소고발의 법률 공방으로 이어지는 선거운동 행태는 당장 멈춰야 한다”며 “합리적 수준의 검증은 계속돼야 하지만, 도덕성을 둘러싼 상호비방보다는 제주 발전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논쟁해 도민을 설득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죽했으면 교수들이 나섰을까 싶다. 하지만 이들의 바램은 희망사항으로 그치고 있다. 정책선거는 이미 물 건너갔다. 각 캠프 간 고소·고발이 난무하면서 선거 이후 후유증이 상당할 전망이다. 제주지사 선거 캠프에서 상대 후보 진영을 검찰과 선관위에 고발한 건만 10여건에 달한다.
문제는 고소·고발 사항에 대한 위법 판단은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가려진다는 점이다. 더구나 선거 후에는 화합을 명분으로 선거과정에서 제기한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게 정치권의 관행이다. 이 같은 이유로 선거 때 흑색선전을 남발해도 후보가 제재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흑색선전은 우리 정치판에서 없어져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흑색선전은 유권자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는 정책선거를 가로막는 독버섯이다. 정책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후보들은 흑색선전과 네거티브에 의존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듯 흑색선전은 무능한 인물이 정치권에서 득세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흑색선전 근절 대책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만큼 이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 정도가 심한 흑색선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또 대표적인 흑색선전 사례는 백서(白書)로 만들어 유권자 교육 자료로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흑색선전을 걸러낼 줄 아는 유권자가 많아야 제대로 된 민주정치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