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찰 과학 수사력 시험대 향후 귀추 주목

‘2009년 어린이집 보육교사 피살사건’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경찰 수사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제주지방법원 양태경 영장담당 판사는 18일 강간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피의자 박모(49)씨를 상대로 피의자 심문을 벌인 끝에 ‘범죄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피의자 박씨는 19일 새벽 12시 53분경 제주동부경찰서 광역유치장에서 풀려났다. 박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된다.
경찰은 이번 영장이 기각된 것과 관련 “9년전 발생한 미제사건에 대해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재수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기존 증거를 재분석해 추가 증거를 수집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아직 사건이 종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관련 증거를 보강해 사건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녹록지 않다. 법원이 ‘증거 불충분’으로 영장 집행을 거부하면서 구속 수사 방침도 틀어졌다. 사건 수사에 대한 시간적 제한은 없지만, 명확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무한정으로 피의자를 조사하는 것도 경찰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 ·여)씨가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2009년 2월 1일경 피의자가 운행한 택시에 탑승했는지를 입증할 수 있느냐다.
당일 새벽 범행현장 인근 애월농협유통센터 앞 CCTV와 애월읍 장전리 산빛마당펜션 앞 CCTV에 NF 소나타로 추정되는 차량의 옆 부분이 촬영됐지만, 당사자가 운행하던 택시와 동일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의자의 택시나 옷 등에서 피해자의 혈흔이나 DNA가 검출되지 않았고, 피해자의 옷이나 신체 등에서 피의자의 DNA 검출되지 않았다.
법원이 최근 동물 실험 결과를 토대로 사망 시점이 2월 1일경이라는 감정결과도 새로운 증거로 평가하기 어렵고, 직접적인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유다.
경찰로서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엊그제 발생한 것이 아닌, 9년전 사건이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증거를 보강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팀은 “실험을 하고 자료수집과 재분석, 재구성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순히 범인을 잡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법정에 세워 유죄판결을 받아 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이번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려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심증이 직접 증거 뿐만 아니라 간접증거가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볼 때 증명력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같은 간접증거가 간접 사실로 인정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아야 하고, 모든 간접사실이 모순돼선 안 되며, 논리와 경험적 과학법칙이 전제돼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범인이라는 심증을 갖더라도 증거로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제주경찰의 과학 수사력이 시험대에 오른 만큼, 이 사건의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