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장은 조천ㆍ남원ㆍ표선의 해발 400m 이상인 목장지대
산마장은 조천ㆍ남원ㆍ표선의 해발 400m 이상인 목장지대
  • 제주타임스
  • 승인 200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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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장은 효종 9년(1658)에 제주목의 2소장(조천읍)과 정의현 9·10소장(남원읍·표선면) 등 한라산 중턱인 해발 400m이상 지대(초지와 산림지대)에  산간목장인 침장, 상장, 녹산장을 말한다.
정의현의  9·10소장 일대에 사목장(私牧場)을 개척한 김만일(남원읍 의귀리)은 선조 27년(1594) 국가에 말 500필을 헌납함으로서 조정에서는 동·서별목장(1620, 10소장내)을 설치하여 여기에서 말을 사육케 하였으며 그 후 효종 9년에 제주목사 이회(李檜)의 건의로 동서별목장을 산장(山場)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아들 김대길을 산마감목관에 임명하여 그 자손으로 하여금 세습케 하였다.
산마장 세습 감목관직은 그대로 내려오다가 숙종 28년(1702) 이형상목사는 산장감목관이 목자들을 학대하여 그 고통과 원한을 정소(呈訴)하므로 세습제를 폐지하여 정의현감이 겸임하도록 하였다. 그 후 김만일 후손인 김세화는 숙종 45년(1719)에 신문고(申聞鼓)를 울려 산장 감목관직을 되돌려 주도록 하여 여려 차례 호소하여 감목관직이 다시 세습하게 되었으나 1782년부터 제주목사가 김만일 집안의 사람 중에서 산마감목관을 택하게 되었으며 1892년(고종29년)에 산장 감목관직이 폐지되었다.
산장감목관은 마감을 겸해서 산장내 교래리(橋來里)에 사무소(館)를 두고 산마장 국마(國馬) 감독을 전적으로 맡도록 했다.
숙종28년(1702)탐라순력도의 한라장촉에 2소목장 옆에 침장과 녹산쪽에 산장이 표시되어 있으나 1700년대 제주삼현도 해동지도(濟州三縣圖 『海東地圖』: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에 산장의 위치는 2소장 위에 1개, 3소장 위에 1개, 9소장과 10소장에 각각 2개로서 모두 6개 목장으로 한라산 동부산간지대에 분포되어 있었다.
그 후 조선후기인 숙종과 영·정조 때(1720~1800)에 침장(針場), 상장(上場), 녹산장(鹿山場)으로 개편되었으며 그 이후 녹산장내에 갑마장(甲馬場)이 설치되었다.
산마장의 산마는 영조(16~18년)때에 1572~1582필이 였으며 그 능력이 우수하여 궁중(어승마)은 물론 명나라에 진헌마로 보내졌다. 특히 산마(山馬場의 馬)는 그 성질이 억세고 기운이 왕성하여 전마(戰馬)에 적합하다는 사복시(司僕寺) 제조(提調) 조 문명의 건의에 따라 국왕은 매 3년마다 바치는 공마를 산마에 한하여 200필을 바치도록 하였다.
산마장의 주위는 200여 리로 한라산 백록담까지 매우 광활하여 말을 잃어버리는 등 문제점이 많으므로 정조 4년(1780)년부터 산마장에 상장의 잣의 높이 4척, 길이 1만1013보(步)를 쌓았으나 방목지가 협소하고 물과 초지가 부족하여 발육부진과 병들어 죽는 말이 많아 잣성의 사이사이를 헐어 말들이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하였다.
 남환박물(숙종30년)의 국영목장의 운영에 있어서 별목장인 경우는 별방장이 감목관을 겸직시켜 임기가 차기 전에 어승마 등 2필을 얻으면 하나 같이 효종때 산마감목관 김대길의 예에 따라 공은 논하여 資級 및 산장의 동색마(同色馬) 처리에 있어서 예외 등을  건의한 것으로 보아 산마장에서 우수한 준마(駿馬)를 생산하여 많은 해택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동색마(同色馬):말이 폐사하면 목자(牧子)는 그 가죽을 수습하여 관가에 바치면 관에서는 마적(馬籍)에 적혀 있는 같은 모색(毛色)인 馬로 변상시키는 것.)
숙종6년(1680) 정의현감 김성구(金聲久)의 남천록(南遷錄)에 제주목사 논 산장 구점상(濟州牧使論山馬驅點狀)을 보면 “이 섬에 마정(馬政)보다 큰 일이 없고 3년마다 구점(驅點) 합니다만 섬에 흉년이 들어 구점의 역(役)을 하게 되면 섬의 남녀노소를 동원되어 10~15일이나 소요되며 혹시 수확시기가 겹치면 농사를 헤치게 하는 것 또한 심한 것입니다. 특히 금년은 한 톨의 곡식도 천금보다 더하니 “다음해 가을에 구점(驅點)을 하시도록 청원하오니 윤허 하시는 것이 백성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 위치
숙종 28년(1702) 이형상목사 재임시 그려진 탐라순력도의 산장구마, 교래대렵과 1770년도의 제주삼읍총지도에 나타난 산마장은 한라산 동쪽, 현 조천읍 교래리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1소장의 상잣, 대경목장, 산굼부리, 성불오름동쪽, 동남쪽의 남영목장, 대록산, 소록산, 따라비오름에 표시되어 있는 하잣과 남쪽 물영아리오름(수령산), 여문영아리오름,  민오름(의귀리공동목장), 구두리오름, 서남쪽의 붉은오름, 서북쪽의 바늘오름(제주도돌문화공원)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지와 산림으로 된 목장이다.
정조6년(1782) 산장에 사육마 2000여 필, 고실마(故失馬) 800여 필로 산장이 횡축(橫築)한 이래 축내가 좁고 산마(山馬; 산마장의 馬)가 성질을 잃고 수초(水草)가 없어 산장의 횡축장을 헐도록 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산마장은 정조 때에 횡축(橫築)쌓은 곳과 건천(천미천의 상류)을 경계로 침장(針場:제주도돌문화공원 지역), 상장(上場:한국마사회육성목장과 산굼부리일대), 녹산장(鹿山場:제동목장과 태흥, 가시리공동목장 일대)으로 분리된 것으로 생각되고 1899년 제주군읍지의 제주지도를 보면 9소장 동쪽에 갑마장이 표시되어 있는데 산마장의 말들 중 공마대상마(貢馬 對象馬)를 방목했던 곳이다.
제주삼현도 해동지도(濟州三縣圖 海東地圖)에 2·3소장의 남쪽에 있는 산장(針場)의 현재 위치는 남쪽에 대경·대원목장 및 제주승마장, 천연기념물 제주마의 방목장 및 물장오리(長兀岳)에서 동쪽이며, 9소장쪽의 녹산장(鹿山場)은 신흥·수망·의귀공동목장과 태흥목장 등이 있고 10소장쪽 상장(上場)은 성불 오름의 서북쪽  산굼부리, 제동목장이 있어 제주마, 몽골마 및 한우, 에버딘앵거스(Aberden Angus:검은색 소:導入牛) 등을 방목하고 있다.
(29-2:산마장 (2)목장조직으로 계속)

장   덕   지  교수(제주산업정보대학 애완동물관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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