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 심포지엄서 현기영 작가 주장
바오 닌 등 전쟁 겪은 문학인 “국가폭력 문학으로 알려야” 한 목소리
소설가 현기영 씨가 “소비향락주의 사회에서 4·3문학이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려면 정교한 창작 전략으로 매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4·3소설 ‘순이삼촌’의 저자인 현기영 씨는 27일 한화리조트 제주 세미나실에서 열린 제주4·3항쟁 70주년 기념 전국문학인 제주대회 국제 문학 심포지엄 기조강연(‘레퀴엠으로서의 문학’)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현 작가는 “불행한 과거를 잊은 민족은 다시 그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며 “4·3의 기억운동을 문학인들이 계속 펼쳐나가야 한다”고 전제했다.
현 작가는 “그러나 표현방식에 있어 어떤 이들은 ‘순이삼촌’이 너무 잔혹해 보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한다”며 “4·3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에게 문학을 통해 4·3을 알리려면 문학의 기억운동이 상투적인 스토리텔링을 넘어 창의적인 형식으로 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작가들이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작가는 이어 “노예시절의 흑인문제를 다룬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가 진부한 소재를 다루고도 고전적 위엄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창의적인 형식미 덕분이었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성공을 거둔 것은 유대 수난의 참혹한 서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코미디를 도입해 공감과 울림을 얻어냈기 때문”이라며 “문학의 기억운동이 이제는 종전의 둔탁하고 무거운 분노의 표현을 넘어 ‘시(詩)’를 잃지 않는 또 다른 형태의 현대적인 리얼리즘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이날 세미나에서는 바오 닌, 리민용 등 전쟁을 겪은 동아시아 문학인들에게서 “국가폭력을 후세대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문학 작업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쟁 군인에서 종전 후 작가로 변신한 베트남 소설가 바오 닌은 ‘평화를 위한 전쟁문학’ 주제 발표에서 “1990년 발행한 ‘사랑의 숙명’(전쟁의 슬픔)이 1991년 베트남 작가협회 최고작품상을 받는 등 찬사를 받았지만 국내 언론과 평론으로부터는 전쟁의 상처와 상실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다룬다는 비판을 받으며 오랜시간 난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바오 닌은 “때문에 두 번째 장편 소설을 내기로 결심하기까지 긴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최근 두 번째 소설을 매듭짓기로 마음먹었다”면서 “그 이유는 베트남 전쟁의 값비싼 교훈이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달이 될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28사건이 일어난 해에 태어난 대만 시인 리민용씨는 대만의 민주화 과정에서 문학이 끼친 영향을 강조하며 “정치가들이 법질서를 통해 국가를 건립한다면 문학은 시민들의 마음 속에 등대가 되어야 한다”고 문학의 역할을 설명했다.
또 오키나와 소설가 메도루마 슌은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되지만 오키나와의 가혹한 현실은 변함이 없다”며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은 시,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전쟁을 알게 되기 때문에 오키나와 작가들에게는 오키나와 전쟁과 미군 문제가 문학 작업의 큰 주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