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재활용품 쓰레기 처리 골머리
우리에게도 곧 닥쳐올 문제
풍요로워진 삶의 어두운 ‘그림자’
쓰레기 더미는 거대한 욕망 덩어리
대책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에
제주 본디 근검·조냥정신이 솔루션
최근 서울의 아파트단지에서 나오는 재활용품 쓰레기 수거 문제가 골칫거리로 떠오르면서 주민·수거업자·행정당국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태가 저 바다 건너 육지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 아니라 곧 우리에게도 닥치게 될 고민거리일 거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단독주택에 살다보니 늘 쓰레기 처리가 은근 귀찮은 일 중 하나여서 가급적이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살려고 애를 써왔다. 그래도 며칠만 마음을 놓으면 금세 한 가득이다.
사실 재활용품으로 모아둔 쓰레기들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저리도 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있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다고 내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마음에 애써 외면한다.
토박이 제주인들은 근면하고 검소한 삶을 제일로 쳐주는 미덕이 있다. 시내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던 자녀들도 주말이면 교외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을 도우러 고향집에 가는 걸 당연시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 들녘엔 가족 일꾼들과 주위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제법 볼 수 있었고 늦은 저녁 시내로 돌아오는 길은 주중보다 더 붐볐다. 그뿐만이 아니다. 혹 주변에서 보여주기식 치장이나 있는 체라도 할라치면 “무슨 허세냐”고 이웃에서 먼저 나무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하릴없이 게으름을 피우는 이를 보면 이웃 어르신들부터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으니 가진 게 없다고 사는 것이 고단하거나 힘들지 않은 제주살이였다.
많이 가진 이도 물 한 방울·휴지 한 장도 귀히 여기는 ‘조냥정신’과 거친 나물과 잡곡일지언정 함께 나누는 수눌음이 있어 참 따뜻한 사회였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외지인들의 제주살이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제주의 삶이 달라지고 있다. 문 닫으면 이웃이 누군지도 모를 아파트에 살며 택배와 배달·외식문화로 편리해진 생활 방식에 점점 익숙해지는 오늘의 제주인들은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가치를 빠르게 잊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 들녘엔 연로하신 노인들만 남겨졌다. 그리고 생산의 터전이었던 밭을 사고파는 부동산으로 탈바꿈시켜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연중 내내 축제인 제주는 여기저기에서 놀고먹는 즐거운 생활로 주말과 휴일이 더 바빠진 것 같다.
고되기만 한 농삿일에 치여 상상도 못했던 간편하고 풍요롭고 멋져 보이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재미가 쏠쏠해졌으니 다행한 일이지 싶다가도 한편에선 가슴이 휑하다. 화려한 신문명과 엄청나게 풍요로워진 신문물은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한편 우리의 삶을 빠르게 점유하고도 모자라 곧 우릴 덮치러 밀려올 쓰나미의 전조이자 유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주변에서 환경 파괴에 대한 염려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지만 인간 파괴, 인성 파괴는 눈치채지 못한 채 서서히 조용히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보면서 비약이 지나치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뿌리 쪽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그다지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현대적 삶의 욕망이 낳은 사생아인 것을, 그러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말이다.
서울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곧 우리 제주에도 곧 닥쳐올 쓰나미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일상 속에 누리는 간편함과 즐거움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임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아직 시간이 남아있을 때 이리도 좋은 것, 이리도 행복한 순간들을 지속 가능하게 지켜나갈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책은 물질보다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필자에겐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가 마치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로 보인다. 그렇다면 물질의 부피와 질량을 줄이는 것은 먼저 우리의 정신과 가치의 재정립을 통한 욕심을 줄이면 될 것이다. 어느 샌가 편안함과 풍요에 중독돼 퇴색되고 있는 제주 본디의 근검과 조냥·수눌음 정신 및 가치를 정갈하게 다듬어야 눈에 보이는 물질의 쓰레기를 더 쉬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