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제주에 한반도에 봄이 온다
4월 제주에 한반도에 봄이 온다
  • 강순희 경기대학교 대학원 직업학과교수
  • 승인 201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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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았던 시절들
군사정권과 지난 9년 세월
4·3추념식 대통령 참석 ‘제주의 봄’

‘4·3 완전한 해결’ 약속
피해자·가해자 모두 이념의 희생양
4월말 남북정상회담도 훈풍 기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요즈음 날씨에 딱 맞아떨어진다. 초여름이다 싶을 정도로 온도가 올랐다가 갑자기 돌풍과 함께 초겨울 날씨가 몰아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날씨보다는 좋은 시절이어야 함에도 상황이 여의치 못할 때 더 자주 사용됐다. 특히,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낱낱이 드러나면서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비참하게 버림받았음을 알게 된 지난 9년여의 세월이 그랬다.

그런데 춘래사춘(春來似春), 올 4월에는 봄 같은 봄이 오는 것 같다. 4월은 절기가 비슷한 북반구의 나라에서는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기에 좋은 달이었던 것 같다. 토마스 엘리엇은 그의 대표 시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며’로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유럽을 황무지로 표현하며 생명의 계절을 아름답게 느낄 수 없는 자신의 삶의 암울함을 노래했다.

우리에게도 그동안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만물이 새로 싹을 틔워도 가슴에 품은 아픔은 속 시원히 틔워낼 수 없었기에 그렇다. 화산도 제주의 4월은 더욱 그랬으며, 그래서 잠들지 않는 남도였다.

내가 어릴 적에 제삿날은 쌀밥에 돼지고기 산적·옥돔국을 모처럼 먹을 수 있는 ‘행복한 날’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 기억으로도 여름 한 자락의 제삿날은 무엇인지 모르는 침울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날은 유난히 우리 동네에는 제사가 많았다. 우리 집안에도 큰 형수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조카가 같은 날 제사였으며 대여섯 집 이상이 각각 제사를 모시고 있었다.

나중에 점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게 4·3의 집단 학살, 억울한 죽음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간 가족이나 다른 누구도 속 시원히 그 사연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말하기를 두려워했고 후세가 알기를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강요된 침묵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민주화 열기로 겨우 4·3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 1989년 4월 3일 제주시민회관에서 공개적으로 추모제 행사를 처음 가질 수 있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비로소​4.3특별법이 제정됐다.

2003년에는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간됐고, 노무현 대통령은 55년 만에 4·3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공식사과를 하게 된다. 2006년 4·3일에는 제주출신 비서관으로서 노무현대통령을 모시고 제주4·3추념식에 참석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초의 참석이었다. 나아가 노 대통령은 거듭 4·3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사과와 명예회복을 약속했다. 냉정함을 유지하려 하였지만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많은 참석자들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좌익폭동에 의한 양민학살’로 4·3을 호도하려는 보수정권의 색깔론이 바탕이 되면서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의 의미는 퇴색되고 말았다. 명예회복을 포함한 배상 등 4·3의 완전해결은 요원해져 버렸다.

비극은 다시 현재진행형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역사의 과거회귀 준동은 차단되게 된다. 지난 3일 제70년 4·3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통한 ‘온전한 봄’을 약속했다.

내 고향 하귀에는 4·3 희생자를 위한 영모원 위령단이 있다. 이곳에는 4·3 당시 숨진 희생자 위령비와 나란히 군·경 희생자를 모신 충의비가 세워져 있다. 어떻게 보면 제주 4·3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면서 해원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는 것인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 토벌대에 끼어 무고한 이웃 주민들 희생을 눈감거나 앞장서야 했고 그 싸움에서 같이 희생되었던 이웃 사람들도 냉전시대 정치권력의 이념에 휘둘린 또 다른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다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4·3추념식을 보면서, 남북합동공연을 보면서 눈물이 난다. 올 4월엔 봄 같은 봄이 오는 것 같다. 4월 말의 남북정상회담이 기다려진다. 또 눈물이 났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4월이 잔인한 달이 아닌 희망 가득하고 행복한 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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