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가 앞두고 ‘숙의형’ 정책개발 추진
투명한 설계와 결과 ‘정론’으로 수용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8일 국제영리병원에 대한 공론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녹지국제병원의 최종 허가를 앞두고, 숙의형 정책개발이 필요하다는 청구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숙의형 정책개발의 근거는 지난해 11월 필자를 비롯한 20명의 도의원이 공동발의하여 제정한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다.
조례에서 정의하고 있는 숙의형 정책개발은 정책결정과정에 원탁회의·공론조사·시민배심원제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도민들이 참여하고, 토론을 통한 공감과 합의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숙의형 정책개발 청구 배경은 국제영리병원이 공공의료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공익적 관점에서 좀 더 세밀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역에서 첫 사례로 실시되는 국제영리병원 공론조사의 성공은 향후 주요정책 결정과정에서 도민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을 변경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국제영리병원 공론조사의 선행사례로 일컬어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을 살펴본 결과 국제영리병원 공론조사의 성공조건으로 다음 3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다수의 의사결정에 대한 믿음이다. 의료체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이 모여 숙의과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떻게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있다.
전문가란 자기 영역에 속하는 정보를 최대한 폭넓고 깊게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어떤 가치들이 어떤 방식으로 얽혀있는지 잘 정리한 것을 충분히 확인한 후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은 시민의 몫인 것이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에 대해 말한 다음의 글을 잘 새겨야 한다. “다수는 비록 한 명, 한 명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함께 모였을 때에는 전체로서 가장 훌륭한 소수의 사람들보다 더 훌륭할 수 있다. 그들은 다수이고, 각자로는 나름대로 탁월함과 지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숙의 설계시 절차의 공정성, 정보의 객관성, 의사결정의 합리성이 지켜져야 한다. 간략하게 풀면 이해당사자 모두가 수용 가능한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고, 또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며, 학습과 토론에 의한 의견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론화를 통해 도출된 결과를 부정하기 위해 절차 및 과정의 공정성에 시비를 걸어 결과에 불복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유의하여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는 공론화 추진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해 추진한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조례가 있으나 숙의 사안마다 논의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세세한 방침을 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신고리 사례와 같이 별도의 규칙이나 지침을 먼저 만드자는 것이다.
셋째, 결과의 수용이다. 공론조사의 결과는 결과 그대로 도지사·도의회·도민사회 내에서 수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론화를 통해 도출된 공론은 단순히 사회 구성원의 의사를 모아놓은 중론(衆論), 그리고 중론의 평균치인 여론(與論)과는 다르다.
학계에서 공론은 다수가 모여 공익에 가장 부합하는 의견으로 정론(正論)으로 본다. 따라서 숙의과정을 통해 도출된 공론은 도민을 대표하는 의견으로,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새로운 실험은 ‘항상 잘 될 것인가’라는 불안감 위에 추진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에서 이루어지는 첫 사례인 공론조사에 대한 우려, 불안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우려와 불안은 성공을 위해 무엇을 유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순기능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성공적인 공론조사 사례를 만들어 갈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