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철 잦은 모임 유권자에겐 부담
강요 아닌 마음으로 오는 후보 희망
하얀 솜털 옷을 입은 진객, 저어새가 떠날 때가 되었다. 처음엔 이들의 방문 소식이 전문가는 물론 기자들도 현장으로 곧바로 달려갈 만큼이나 고마운 정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겨울나기의 궁금증이 무뎌진다. 지레짐작으로 잘 있겠지 하며, 하도리나 성산포 철새도래지에 찾아가는 것이 뜸해진다.
그러다가 이들에게 뜻하지 일이 일어나거나 제주를 떠났을 때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많다. 자신의 소홀함은 탓하지 않고, 아무런 기별도 없이 떠난 저어새에게만 일방적으로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본다.
전국적으로 화재·지진·미세먼지·한파 등으로 매일 첫 뉴스를 차지할 정도로, 연초부터 닥친 겨울나기는 그야말로 버거운 나날이었다. 특히 농축어민과 시장 상인들을 비롯하여 사회적 약자들의 체감지수는 심각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제주에서도 수십년 만에 감당하기 힘든 폭설을 만났다. 일부 도로를 아예 통제해야 했다. 모두들 쌓인 눈을 녹이느라 흠뻑 땀을 흘렀다. 도로에서 활주로에서 비닐하우스에서 골목길에서 그리고 직장에서도 난리였다.
더구나 입춘굿판도 폭설 속에 치르다보니, 벚꽃이 날리는 봄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소망했다. 근데 되레 걱정이다. 왜냐하면 봄소식보다도 정치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메시지가 눈발 날릴 듯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철이다. 6월1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임도 많아질 것이다. 도민들의 심판을 받는 정치인들의 입장에선 내미는 악수에 응해주거나 지지를 당부하는 전화를 끊지 않거나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특히 특정 모임이나 자리에 직접 찾아주게 될 때는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일 것이다.
처음에는 친구라서, 괜당이라서, 선후배라서, 그리고 뒤탈을 생각해서도 만나 주거나 참석할 수밖에 없는 처지일 것이다. 자주 가지 못하는 유권자입장에선 한번 가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상대방은 얼마나 고마울까. 처음엔 큰 절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다. 눈을 치울 때보다 눈이 다 녹을 때가 더 위험하다. 어려운 일은 함께 힘을 모으지만, 조금 편해지면 서로의 생각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 긴장 탓에 두 번째 모임을 잡는다. 처음보다 덜 긴장하게 되면, 첫 모임에 모습을 보인 사람은 당연히 올 것이라 생각한다. 원하는 사람도 가야될 사람도 그런 마음이지만, 눈치 있는 유권자는 그렇지 않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대신해서 다른 식구를 보내거나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여기도 저기도 ‘눈도장’을 찍느라 바쁘다.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가고 싶은 않은 곳이 정치판이라서, 그만큼 자주 가기가 녹록치 않다.
여러 사람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려면, 눈을 치우는 것만큼이나 눈치 보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제주에선 누구나 겪게 되는 인지상정이라, 여기서 터를 잡은 사람들도 그런 속사정을 조금씩 알아간다.
모임과 연락이 계속 이어지면서, 고마운 마음이 점점 섭섭함으로 변해갈 것이다. 자기만 급하고 바쁘다. 그러면 진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속담도 있지 않은가.
유권자 입장에선 딱히 무슨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 없다. 그저 믿어주면 고마울 뿐이다. 누가 얼마나 진정성 있고 성심을 다하는지 보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초지일관 주변을 잘 챙기면 된다.
이제 겨울철새들이 떠나면 텃새와 여름철새 간의 세력권 싸움으로 요란질 것이다. 좋은 자리는 새나 사람이나 탐나기는 마찬가지다.
승패 때문에 괜히 지인에게 애달 필요가 없다. 새들도 의연하게 살아간다. 백록담에 쌓인 눈도 자연스럽게 녹듯이 봄날은 간다. 따가운 눈총을 겨누는 사람보다는 고맙고 당연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후보자들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