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수형인들이 “평생의 한(恨)을 풀겠다”며 제기한 재심청구와 관련 첫 심문이 지난 5일 진행됐다. 지금은 백발노인이 된 열여덟 명이 지난해 4월 19일 재심을 청구한지 무려 10개월 만이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5일 오후 4·3 수형인 18명이 제기한 재심청구에 따른 첫 심리를 진행했다. 그러나 재심개시 자체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공방이 벌어지면서 재심(再審) 결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재판부는 재심청구의 적법성 여부에 고심이 깊다고 털어놨다. 판결문과 수사기록 등 재판기록이 없어 공소사실을 특정하기가 힘들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등 해외 사례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특히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전제로 판단해야 한다. 증거도 없고 증인도 대부분 사망했다. 때문에 본안 판결이 불가능하다.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지더라도 공소가 기각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에 변호인측은 재판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론을 폈다. “수형인 명부는 국가가 작성했고 범죄경력조서와도 대부분 일치해 증거로 충분하다. 이번 재심청구는 국가공권력에 의한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며, 공소사실 특정 등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또 고문이 자행됐던 당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재판부의 고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 논리대로라면 판결기록은 없는데 전과자는 엄연히 존재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4·3 피해자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구금되기도 했다. 판결문과 수사기록 등이 없는 것은 국가의 잘못이지, 그 책임을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다시 전가하는 것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지난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과 관련 사과를 표명했었다. 4·3 수형인 문제는 형식절차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두고 역사적 반성 차원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날 법정 발언권을 신청한 4·3수형 피해자 양일화 할아버지(90)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억울하게 형무소를 다녀와야 했다.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후손들에게 떳떳하고 싶다. 좋은 소식을 듣고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눈물로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