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대외전략가 브레진스키가 이라크전쟁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퍼부었다. 그는 부시의 대외정책은 한마디로 미국의 파멸을 스스로 초래하는 ‘자멸적 국정운영’이라고 개탄하였다. 부시는 이라크 현지에서의 전투에서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미국내 여론싸움에서도 갈수록 수세에 몰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백성들은 흙으로 밭을 삼고 관료들은 백성으로 밭을 삼아서 살과 뼈를 긁어내는 것으로 농사를 삼고 가렴주구하는 것으로 추수를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되어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정약용(丁若鏞)은 그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관료들을 나무랐다. 기층민중을 사랑한 정약용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베트남 통일의 아버지 호찌민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애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가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서고 있다. 또 호찌민은 그의 유언에서 “전후 남베트남의 누구도 미워해선 안 됩니다. 군인도 경찰도 강요된 싸움을 했고, 살기 위해서 그리했습니다. 모두 한 민족으로 동등하게 대우해야 합니다”고 죽으면서까지 평화를 강조하여 반공에 찌든 우리를 놀라게 하고있다.
나는, 이러한 호찌민의 정신이 베트남이 아시아의 새로운 용으로 떠오르는 이유가 아닐까, 라고 결론지으면서, 강대국 미국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베트남 사람들의 정신의 바탕에는 이처럼 관용의 정신이 깃들여 있으며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 불신과 적개심을 걷어내고, 앞장서 가해자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고, 상처 입은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베트남 곳곳엔 전쟁기념비, 추모비가 세워져 있지만, 그들은 이 아픈 역사를 기억할 뿐 자신들을 증오에 가두지는 않는다.
최근 보훈병원에는 낯선 손님들이 방문하였다. 미군과 그리고 한국군 등과 맞서 싸웠던 베트남 재향군인회 소속 참전군인들이다. 이들 미군이 쏟아 부은 고엽제 세례를 받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한국군 상이군인들을 만나 위로하였으며,“한국과 베트남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굳게 맺어지도록 합시다. 이를 위해선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상처를 입혔던 당사자들이 먼저 화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라고 진정으로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은 그들을 위하여 과거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 이라크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할 문제이다. 한국인은 과거 베트남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을 도왔으며, 지금 이라크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을 돕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한국군 해외파병, 그것은 베트남 민중에게, 이라크 민중에게 과연 무엇일까,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수만 명이 모여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며,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고 있다. 부시의 거짓말로 수천 명이 숨진 참사가 진실임을 밝히면서, 조지 부시는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나 9.11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거짓말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미군 사망자도 2000명을 넘어서는 순간이다. 정말,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한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파병 세 번째 국가이며, 올 12월에 파병할 부대원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내년 예산안에도 주둔비용을 포함했다니, 정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수밖에 없다.
김 관 후 (북제주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