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담긴 제주의 돌·담·집
제주가 담긴 제주의 돌·담·집
  • 김은철 대한건축사협회 정회원/아란건축사사무소 대표
  • 승인 2018.0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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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섬 제주’ 돌이 섬 문화의 핵심
지혜가 녹아있는 돌담들
형태 따라 외담·겹담·잣담·잣굽담 등

최근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준비
토지주 등 반대 봉착 ‘아쉬움’
적잖은 난제 극복 좋은 결과 기대

 

 

제주도의 돌담은 밭과 밭의 경계를 이루고 집과 집을 이어주는 올레길을 만들었다. 제주에선 돌담으로 이어진 골목사이로 옹기종기 초가집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가옥들은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주사람들의 생활방식이 현대화되고 주거형태도 변하면서 제주의 돌·담·집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졌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제주로 유입하는 이주민들이 방치되던 돌창고나 전통가옥들을 개보수를 하면서 제주의 전통가옥들이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로 주거용에서, 요즘에는 카페나 갤러리·주택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화산섬인 제주는 돌문화가 섬 문화의 핵심일 정도로 돌을 빼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땔감으로 쓰인 나무 대신 지천으로 널린 돌을 무한자원으로 이용하면서 의식주 전반에 걸쳐 독특한 생활 민속 문화를 형성했다.

얼기설기 쌓은 돌담은 밭작물을 보호하고 밭과 밭의 경계 역할을 했다. 소나 말로부터 무덤을 지켰고 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벽이기도 했다. 심지어 해녀들이 작업 후 쉬는 공간인 ‘불턱’도 돌로 에워쌓아 만들었다.

돌담은 제주사람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자산이지만 도로개발·건물신축·농지정리 등으로 점차 사라지고, 허물어진 돌담은 자갈로 쪼개지거나 땅속에 묻혔다. 돌담이 있던 자리는 시멘트벽과 콘크리트가 대신했고 돌담을 쌓던 돌쟁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제주에선 돌을 다양하게 이용해왔다. 돌담의 형태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농경지를 두르는 밭담은 쌓는 방식에 따라 ‘외담’ ‘겹담’ ‘잣담’ ‘잣굽담’으로 나뉜다.

한 줄로 쌓는 외담은 가장 흔한 형태다. 한 줄로 쌓았더라도 거칠고 요철이 많은 제주 현무암이기 때문에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거친 표면을 이용해 잘 맞물리도록 쌓아놓으면 태풍이나 강한 바람에 흔들거려도 쓰러지지 않고 견딘다.

겹담은 큰 돌을 두 줄로 쌓고, 그 사이에 잡석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접담’이라고도 한다. 잣담은 겹담이 변형된 것으로, 자갈을 넓게 쌓아올려 그 위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다. 경작지까지 진입하는 농로로 이용하며, ‘잣길’ 또는 ‘잣벡담’이라고도 부른다. 겹담이나 잣담은 돌이 많은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잣굽담은 아래쪽에 작은 돌을 쌓고 그 위에 큰 돌로 쌓는다. 장소에 따라 이름과 모양이 다르다. 집 주위에 쌓은 돌담은 ‘울담’, 골목에는 ‘올렛담’, 목장에는 ‘잣담’이라 한다. 또 고기잡이를 위해 바다에 쌓은 ‘원담’,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에워싼 ‘불턱’,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가에 쌓은 ‘환해장성’도 있다. 무덤 주변을 쌓는 ‘산담’도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담이다.

오래전부터 자연은 제주사람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화산섬인 제주의 토양은 돌이 많아 농사짓기 어려웠고, 빗물은 땅속으로 흘러내려 식수를 구하기조차 힘들었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거친 바람이 몰아쳤다.

하지만 제주사람들은 때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이겨내며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구멍이 숭숭 나있는 현무암으로 만든 돌집과 돌담이다. 토양이 화산회토였기 때문에 흙벽을 만들 수 없었던 제주사람들은 바람을 막기 위해 현무암을 다듬고 쌓아 올려 집을 짓고 돌담을 만들었다.

제주의 돌·담·집들은 제주를 담는 ‘훼손이 돼서는 안 될’ 그릇이다. 그러하기에 제주도민의 염원을 담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해당 토지주나 인근 지역민들의 이해관계에 막혀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보호와 보존에는 동의를 하지만 풀어내야할 난제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제주의 돌·담·집들은 도시의 건축물처럼 권력을 상징하거나 저명한 예술가들의 미학이 담겨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지혜와 역사가 담겨 있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다.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오늘에 달려 있듯이, 새로움 또한 늘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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