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개발로 잠식된 아이들 놀이공간 되돌려줘야”
“도시개발로 잠식된 아이들 놀이공간 되돌려줘야”
  • 문정임 기자
  • 승인 2018.0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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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간이 우선이다] <18> 에필로그

태어나자마자 아이에게서 ‘놀 권리’ 앗아가는 사회
맨땅은 찾아볼 수 없이 모든 건 인공 구조물 차지
천혜 자연 갖춘 제주는 수많은 놀 공간 창출 가능

제주매일과 미디어제주는 3년째 공동기획을 꾸렸다. 2015년 첫해는 공교육을 변화시켜보자는 의지로 시작했다. 마침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혁신학교에 관심을 둘 때여서 첫 기획의 의도는 시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잊고 지내던 게 있었다. 바로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교육’은 무엇인가? 우리는 답은 얻지 못 하고 대신 ‘아이’를 떠올렸다. 우리가 제아무리 교육을 외치더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교육 수혜를 받아야 할 아이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 같았다. 그래서 두 번째와 세 번째 기획은 놀이로 방향을 잡았다. 놀이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스런 몸짓이다. 그걸 두 번째 기획에서 적용해봤고, 세 번째 기획은 실제 노는 장소를 취재했다.
<편집자주>

▲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 4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어린이가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좀 놀게 해 달라”

에필로그는 2년간 추진한 놀이 기획을 마무리하는 자리이다. 어떤 글을 써야 제대로 정리가 되는 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놀이를 잃은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놀게 해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고, 놀 공간도 없다. 국민 소득 3만 달러 시대, 선진국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다.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누려야 할 즐거움은 놀이이다. 어른들은 그걸 강탈하고 있다. 대신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붙잡고 강습을 시킨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어른들의 무자비한 행동은 취학 이전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른들은 집 주변에 또래가 없기 때문에 학원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사회 구조가 그렇기 때문에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학부모들도 있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보육시설을 늘려달라는 호소도 있다. 모두 일리는 있다. 결국 근원적인 문제해결은 사회가 나서줘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도 일본 사회에서 말하는 ‘카깃코’(집 열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양산하고 있고, 그런 연유로 아이들의 놀이는 차츰 잊히고 있다. 맞벌이 사회의 한 단면이 ‘카깃코’를 부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카깃코’가 맞벌이를 하는 부모의 잘못은 아니다. 맞벌이를 즐겁게 할 수 없도록 만든 사회에 있다. 어느 새 놀이가 줄어들고, 놀 공간도 더 빠르게 사라졌다.

△놀이공간은 과연 무엇인가

이쯤에서 놀이공간은 무엇인지 고민을 해보자. 놀이공간은 어디에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어른들이 있겠지만, 사실 놀이공간은 없다. 도시화가 가져온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뺏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개발을 하면 의무적으로 공원시설을 갖추고, 거기에 어린이 놀이터를 만든다. 이걸 어른들은 놀이터라고 부르지만, 고무매트와 조합놀이대만으로 기계적으로 구성된 놀이터에 관심을 두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심지어 어른들은 이런 놀이시설에 대해서 마저 아이들의 소리가 시끄럽다며 없애달라고 민원을 제기한다.

놀 땅도 없다. 어른들은 학교 운동장과 주변 놀이터가 모두 땅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땅이 아니다.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땅은 ‘맨땅’이다. 맨땅은 인공적인 포장이 되지 않은 순수 자연을 말한다. 사단법인 놀이하는사람들은 그런 땅을 찾았을 때 “대박”이라고 외친다. 그만큼 놀 수 있는 땅이 없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놀아야 할 장소는

맨땅이면 좋겠다. 포장된 곳을 걷어내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땅이 보고 싶다. 그런 땅이 있어야 아이들은 막대기를 들어 놀이를 위한 틀을 그리고, 쫓고 쫓기며 뛰어다닐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놀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맨땅을 드러내는 일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전라남도 순천시다. 순천은 ‘기적의 놀이터’를 2곳 만들었다. 장기적으로 10곳까지 늘린다는 구상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많다. 다른 놀이터에 비해 자연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공미가 가미된 자연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없다. 놀이란 스스로 놀 줄 알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이렇게 놀아 봐”라고 말하는 순간, 놀이에서 창의는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면 어떤 놀이터가 제대로 된 놀이터일까. 제주매일과 미디어제주는 공동기획을 하며 일본을 찾게 됐다. 일본은 200개에 달하는 모험놀이터를 갖추고 있다. 모험놀이터는 일본 현지에서 ‘플레이파크’라고 불린다. 플레이파크는 뭔가 다르다. 순천시의 ‘기적의 놀이터’가 가지지 못한 게 있다. 다름 아닌 자연이다. 아이들 파 놓은 그대로의 흙, 그 웅덩이 사이로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나무가 그늘과 미끄럼틀을 선물해주는 곳.

△제주에 맞는 놀 장소는

애들에게 자연이란 바깥놀이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우선 그런 장소를 만들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떻게 그런 플레이파크를 만들었을까. 바로 공원에 답이 있다. 일본의 공원은 주택단지와 연결돼 있다. 공원의 일부를 플레이파크로 떼어준다. 그곳의 맨땅에서 어린이들은 마음껏 놀게 된다. 플레이파크로 등록이 되면 위험한 행동도 가능하다. 톱질도 할 수 있고, 망치질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불도 피울 수 있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위들이 플레이파크에서 펼쳐진다. 우리는? 불가능하다.

제주도라는 환경으로 옮겨보자. 제주도엔 수많은 놀이터가 있다.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물론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유는 똑같은 놀이시설에다, 맨땅을 고무매트가 덮고 있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놀이기구를 몇 번 타면 놀이는 끝이 난다.

일본의 플레이파크를 홍보하는 홈페이지를 가면 첫 화면에 ‘어린이에게 놀이란?’이라는 질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플레이파크는 아이가 놀이를 만드는 놀이터”라는 문구도 인상적이다. 일본은 플레이파크를 만들기 위해 엄마들이 노력하기도 하지만, 행정이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일본 도쿄의 네리마구는 구청이 직접 나서서 어린이숲을 조성, 그곳에 플레이파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최적의 놀이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차량으로 조금만 이동을 하면 바다가 나오고, 숲이 나온다. 그런 공간을 조금만 아이들을 위해 떼 주면 된다. 순천시와 같은 수십억 원대의 돈을 투입하지 않고서도 아주 멋진 놀이공간을 만들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공간이 필요한 것인 지도 모른다.

조금만 달리면 바다와 숲이 있는 제주 섬의 아이들이, 조합놀이대의 계단을 올라 경사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행위만을 무한 반복하는 것은 너무 안타깝지 아니한가.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미래 인재의 특징은 자기주도적인 탐색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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