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작곡가 이영훈의 ‘유작’
그의 추억 어린 광화문 일대 이야기
새롭게 제작 한달 공연 중
쉽지 않은 작업 고민 흔적 역력
어설픈 실사영상은 아쉬움
‘순수한 정서’ 계속 전이되기를
광화문에서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따라 덕수궁을 지나 정동 길에 이르는 거리는 그가 사랑과 예술을 열망하고 고뇌하며 동행했던 길이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서정적인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의 발라드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은 많은 곡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당시 무명가수였던 이문세와 만나 발표한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필두로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 ‘광화문 연가’, ‘옛사랑’, ‘붉은 노을’을 비롯한 숱한 곡들을 히트시키며 한국 대중가요의 영역을 확장했다. 보통 일반적인 작곡가들이 한 장르의 음악에 머무는 것과 달리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한 시도를 꾸준히 추구했다.
그 시도의 결정판으로 자신의 곡들을 모아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집약하고 싶어 했다. 2008년 49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준비하고 있었던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결국 미완성 유작으로 남게 됐다. 그로부터 3년 뒤, 그의 유지를 받들어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첫선을 보였고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한 달간 새롭게 제작된 ‘광화문 연가’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영훈의 자전적 삶에 근간을 둔 구성은 주인공 명우가 임종 직전 지난 삶을 추억하는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뮤지컬에서 내용 전달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는 가사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스토리를 작가 임의대로 전개하기란 매우 어렵다.
작가 고선웅은 연극적 상상력을 발휘해 생과 사의 언덕에서 현재와 과거를 유쾌하고 애절하게 오가며 추억과 기억을 정리해나간다. 다만 어떤 장면의 전개는 LP판의 바늘이 튀듯이 급작스럽게 펼쳐진다는 느낌이 든다.
새로 창작된 곡이 아닌 기존 음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쥬크박스 뮤지컬 공연의 제작은 작곡의 산고를 거치지 않아 일반 창작뮤지컬보다 수월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결코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영훈 곡의 대부분은 사랑과 이별 등,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내용과 발라드 형식이여서 드라마로 엮어내기에 많은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가수 이문세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되어있는 노래들의 이미지와 정서의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힘든 부분도 크게 작용한다.
뮤지컬의 곡 구성은 독창·이중창·합창 등의 적절한 배치로 스토리 전개에 힘을 집중시키고 확장시켜나가기 수월한데 대부분 가수 솔로로 작곡된 대중가요는 태생의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광화문연가’의 편곡과 연주는 원곡의 골격을 충실히 존중하면서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무대는 추억을 채색하기 위해 하얀 도화지처럼 비워놓고 장면마다 영상으로 표현하는 일관된 형식을 잘 유지하며 기능적으로 충실하다. 다만 대부분의 장면을 표현한 영상의 완성도는 광화문과 덕수궁 등의 정서를 오히려 반감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설픈 실사영상보다 애잔한 애니메이션 같은 기법의 영상을 택했으면 오히려 추억과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객석엔 이문세의 노래에 열광하던 시절의 관객이 아니라 젊은 관객이 주류를 이룬 모습이 반가웠다. 덕수궁 돌담길은 여전하지만 이제 광화문은 많이 변했다.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의 분식집도 음악 감상실도 광화문레코드와 국제극장도 없다.
그러나 그가 이곳에서 절실하고 순수하게 만들어낸 정서는 계속남아 젊은 지금의 청춘들에게도 전이되기를 기대해본다. 다만 이들이 출연배우의 팬들만이 아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