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자랑스러운 제주인상 수상자들
2017 자랑스러운 제주인상 수상자들
  • 한경훈 기자
  • 승인 2017.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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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현대문학 연구 새 지평 열어

교육학술 부문
김영화 前 제주대학교 교수

제주시 이호동 출신인 김영화 선생은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이후 제주여고를 거쳐 제주대학교에서 30여 년 동안 교편을 잡으면서 제주문학 연구․비평 및 후학 양성에 기여한 바 크다.

선생은 현대문학 분야에서 제주문학의 독자적인 특성을 탐색하여 맨 먼저 뚜렷한 성과를 낸 학자이자 평론가이다. 특히 선생의 저서 ‘변방인의 세계―제주문학론’(1998)은 제주 현대문학만을 연구의 차원에서 접근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자료의 발굴 성과를 연구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제주문학을 체계화했으며, 후속연구자들에게 그 방향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저서이다. 선생은 또한 ‘분단 상황과 문학’(1992)에서 4·3소설을 집중적으로 거론함으로써 4·3문학 연구에서도 선구적 역할을 했다.

‘한국현대소설의 구조’(1977)와 ‘현대작가론’(1983) 등은 한국현대문학 분야에서 학문적 기여도가 높은 선생의 저술이다. 선생의 열정적인 연구와 교육 활동으로 제주지역의 현대문학 발전에 새 전기가 마련됐음은 물론이다. 선생은 1972년부터 2003년까지 제주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현대소설론, 현대작가론, 문학평론 등의 강의를 통해 많은 후학들을 양성했다.

선생은 인문대학장, 탐라문화연구소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면서 제주대학교 발전에도 기여했다.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 1983년), 녹조근정 훈장(2003년) 등을 수상했다.

 

“제주어 시어에 담아 4·3의 아픔 전해”

문화예술 부문
황금녀 제주어 시인

황금녀 시인은 1939년 제주시 함덕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10여 권의 시집을 통해 우리의 고어(古語)이자 제주 사람들의 모어(母語)인 제주어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그녀가 9살 때 직접 체험한 제주4․3사건을 후대에 알려 다시는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고 화해와 상생으로 거듭나는 제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4년 제2회 기독여성 문예공모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07년 시집 ‘주님 뵈올 날 늴모리 동동’, 2008년 시집 ‘복에 겨워’ 등을 상재했다.

2010년 ‘창조문예’ 신인상에 당선되어 시인으로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게 되어, 같은 해 ‘나 음에 불암서마씀’을 상재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제주의 옛 풍경과 정취를 어린아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2013년 동시집 ‘고른베기’, 2015년 ‘착둥이’를 상재했다. 2016년에는 제주의 어린이들에게 제주어의 소중함과 제주의 옛 정취를 일깨운 공로를 인정받아 종려나무문학상을 수상했다.

또 같은 해에 제주가 4․3의 아픔을 딛고 밝고 희망찬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시집 ‘베롱 싀상’을 발간했다.

올해 들어서는 시집 ‘이 싀상 베끳더레  나가카’를 영문번역본으로 출간했고, 또한 ‘근 이 청멩케 넘어감서고’ 등의 시집을 상재했다.

 

16년간 ‘바벨 투혼’ 제주명예 드높여

체육진흥 부문
김수경 여자역도선수

김수경(32·제주도청)은 전국체전에서 제주체육 역사상 최다 메달을 획득한 현역 역도선수다.

지난 2001년 중앙여고 1학년 당시 전국체전에 출전해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지난해 제97회 전국체전까지 총 48개(금메달 4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올해 제98회 전국체전에선 허벅지 부상으로 메달을 수확하지 못했지만, 내년 대회에 출전해 기록을 경신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제주역도의 간판인 김수경은 국제 대회에서도 호성적을 거뒀다. 지난 2002년 한중일 주니어 선수권대회 금메달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국가대표를 지내며 국위를 선양해 왔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1위로 국가대표에 선정된 김수경은 올림픽 본선무대에선 최종 합계 225kg(-63kg급)으로 아쉽게 5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5년 동아시안게임 여자 역도 은메달, 2010년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2013년 제27회 카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동메달 등을 수확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김수경은 2011년 대한역도연맹 선정 여자부 우수선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해 제주도 체육상 시상식에선 2016 제주체육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바벨을 들기 시작한 김 선수는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됐지만, 제주체육의 명예와 자신의 기록 경신을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제주산 초콜릿’으로 세계시장 공략

산업경제 부문
정기범 제키스 대표이사

제키스는 감귤 등 제주산 농산물을 가공해 초콜릿 등 과자류를 생산하는 업체로 단기간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제주 향토기업이다. 생감귤 화이트 초콜릿, 제주 감귤 초콜릿, 제주 백년초 초콜릿, 제주 청보리 쿠키, 제주 와바감귤, 제주와바 녹차 등을 생산, 국내와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제주향토 강소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기범(53) 대표는 2008년 자본 잠식 상태인 초콜릿 회사를 인수해 (주)제키스를 설립, 그해 연매출 15억원을 올리면서 회생의 기반을 마련했다. 제키스는 지난해 말 매출이 90억원에 육박하는 등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제키스는 지속적으로 설비와 생산시설 확충 및 연구개발에 투자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2010년에는 약 30억원을 투자 신(新)공장을 유수암에 건립했고, 2014년에는 20억원을 투자해 제2공장을 신축했다. 이로써 도내에서는 생산하지 못했던 리얼 초콜릿 생산 라인을 완비해 국내 대기업에 초콜릿 제품을 공급하고, 해외에도 7개국에 연간 50만~100만달러 정도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초콜릿 대용량 자동화 설비 시스템을 도입, 생산성 향상 및 고부가가치 제품 양산화을 이뤘다.

정 대표는 도내 사회단체 및 요양시설 등에 제품 기부 및 후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는 등 사회공헌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든 앞둔 고령에도 봉사의 끈 놓지 않아

사회봉사 부문(개인)
고명대씨

1967년 소방공무원 재직 시절, 현장 출동에 나섰다 몸을 다쳤다. 몸이 성치 않아 받게 된 마사지 치료는 먼 훗날 이웃의 돌봄으로 이어진다. 1994년부터 아라종합사회복지관에서 23년 간 꼬박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헌신해왔던 고명대(77) 씨 이야기다.

소방관 재직 시절 배운 지압과 마사지 기술은 생활이 어려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노인과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자신의 몸이 성치 않을 때 받았던 마사지 치료의 이로움을 알고 직접 마사지 치료를 배워 이웃의 몸을 돌보는 정성을 들였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던 고씨에게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고, 어깨도 주물러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의 봉사였다.

여든을 내다보는 고씨가 할 수 있는 봉사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몸이 불편해져 2011년부터는 마사지 봉사활동은 중단하게 됐다. 하지만 봉사의 끈은 이어졌다. 식사배달과 세탁봉사, 식기 소독 그리고 칼갈이 활동 등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 젊은 봉사자들에게 몸소 실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로식당 주방에서 하고 있는 칼갈이 봉사활동은 식사준비를 하러 오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월 1회 아라복지관을 찾아 급식 봉사하는 이들을 위해 한 자루 한 자루 칼을 갈고 있다. 그는 “칼이 잘 들어야 봉사자들이 일하기 좋다”며 칼갈이 봉사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역민 자립 돕기’ 창립 이념 60여년 실천

사회봉사 부문(단체)
이시돌농촌사업개발협회

(재)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이사장 마이클 리어던 조셉)는 지역민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맥그린치 신부가 1962년 설립했다.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민들의 경제적 자립 지원과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회 및 교육 사업 등을 이어오고 있다.

설립 이전인 1961년, 성이시돌 중앙실습목장을 개설해 가축사양관리·농기구 사용 및 정비 등 교육과 함께 교육 이수생에게는 돼지 20마리를 분양했다. 이시돌목장이 국내 최대 규모의 유기농 목장으로 성장한 원동력이다.

1962년에는 고리금의 사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내 첫 신용협동조합을 개설, 지역 농가들에게 저금리를 이용해 자립의 여건을 마련토록 도왔다. 1970년에는 신용협동조합을 지역민들에게 환원해 도내 31개의 조합으로 파생됐다.

1963~1976년까지 이시돌목장 내 농업기술원 기초교육 이수자에게 약 1000ha를 개간해 98세대 입주‧분양을 통해 자립의 터전을 마련해 줬다.

1964년에는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잉여 옥수수를 지역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한 배합사료 공장을 설치, 가축을 키우는 농가들에게 공급했다. 제주지역 양돈업 기틀이 다져지는 계기가 됐다.

1970년에는 성이시돌 의원을 개원해 극빈자들에 무료진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2000년대에 들어 한림지역에 다른 병원이 많이 생기자 호스피스 전문의원으로 전환했다. 고통을 경감시키고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성이시돌 의원은 설립취지에 따라 현재까지도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는 이외에도 △성이시돌 양로원 △농촌 노인복지회관 △농촌 아동 복지 사업 △낙농 가공 공장 설립 및 이관 △사회교육연수원 개설 활동 등을 진행했다.

 

한국 독립영화계 ‘거장’으로 성장

특별상
오멸 영화감독

오멸 감독은 2009년 영화 ‘어이그 저 귓것’으로 데뷔 후 고향 제주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제주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 감독의 대표작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이름 세상에 알리게 한 작품은 제주 4․3을 영화화한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이다. 지슬은 ‘2012 올해의 독립영화’로 선정되는 등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상을 휩쓸었다. 당시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지슬’을 올해의 독립영화로 선정하면서 “80년대 이후 30년에 이르는 독립영화의 역사에 남을 걸작이고 또 하나의 ‘영화적 사건’”이라고 호평한 바 있다.

오 감독은 세계적인 권위의 독립영화제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진 한국 독립영화계의 실력파 감독으로 성장했다.

특히 제주4·3을 공론화하는데 발판을 마련했던 1976년 소설 ‘화산도’와 1978년 ‘순이삼촌’ 이후 제주4·3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지슬’은 제주4·3의 진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특히 2018년 제주4․3 70주년을 앞두고 요즘 4․3의 전국화가 화두로 떠오르는 상황이라 영화를 통해 4․3을 널리 알린 오 감독에 대해 제주인들은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오 감독은 지슬 외에도 ‘뽕똘’ ‘이어도’ 등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다수 제작했다.

 

결혼이주여성 권익복지증진에 앞장

특별상
국제가정문화원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소재한 국제가정문화원은 도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결혼 이민자와 그 가족의 권익을 옹호하고 복지증진에 성공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다문화가족 단체다.

국제가정문화원이 첫 번째로 주안을 두고 있는 사업은 지역사회 봉사하는 이주여성들의 경로효친 사업이다. ‘결혼이주여성 효문화 이해사업’은 지역 어르신들을 찾아가 실제로 살을 부대끼며 서로를 알아가면서 지역주민들에게는 다문화 인식개선 교육이 되고, 이주여성들에게는 역량 강화가 되는 프로그램이다.

두 번째로 한국문화교육이다. 한국어 교육을 비롯해 인성교육, 밥상머리예절 등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먼저 익힘으로 한국을 알아갈 수 있게 해준다. 체험사례 발표와 다문화이해교육 등 다문화에 대한 편견과 현실적인 문제의 폭을 좁혀주고 있다.

세 번째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특기와 적성을 파악해 적응을 돕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주말이면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특지적성 교육으로 바이올린교육, 미술활동 등 정서지원을 하고 있다.

2018년 1월이면 개원 10주년을 맞는 국제가정문화원의 임정민 원장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더불어 먼저 이주해온 선배들이 안정된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점점 참 지역공동체로 발전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초창기에는 다문화가정 이혼상담이 많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선 문화원에 나오는 회원들 중 이혼이나 가출 관련 상담이 별로 없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든다”고 그간 단체 운영의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예산이 늘 부족해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좀 더 수준 높은 교육 을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며 “그러나 A4용지 한 장 없이 시작했던 초심을 잃지 않고 다문화가정과 지역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각오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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