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은 70년대에 이미 ‘정보 초고속도로’의 개념을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정보 초고속도로는 인공위성뿐만 아니라 강력한 전송망으로 작동되는 텔레커뮤니케이션 부가서비스 네트워크로, 레이저빔과 광섬유에 의해 구축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 벌써 선언하였다. 그 후 20년이 지난 1992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데이터 초고속도로’라는 제안을 입에 올렸다고 한다. 백남준의 이 놀라운 상상력과 창의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한국에서 길러졌다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지난달 9월 8일 어머니들이 거리로 나섰다. ‘책읽기’를 평가의 도구로 삼으려는 교육부에 반발해서 ㈔어린이도서연구회 동화 읽는 어른모임 제주협의회 회원들이 8일 오전 10시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며 2007년 고교 신입생부터 교과별 독서활동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독서이력철’과 ‘독서매뉴얼’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서울시교육청은 ‘독서지도 자료집’을 발간했고 부산시교육청은 ‘독서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교육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획일적 독서 강제’, ‘개인의 지적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그동안 많이 개선되어 획일화 교육에서 창의력 교육으로 이행되고 있는 과정에 있지만 아직도 교육을 획일화시키고 서열화하는 습성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듯하다. 창의력의 원동력인 상상력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의 독서이다. 그런 가장 기초적인 분야마저도 ‘독서이력철’을 위한 독서가 되어야 하는 서글픔에 참으로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의 열쇠는 창의력에 있다. 이제는 과감히 획일적인 교육의 틀을 깨고 각자의 독특한 개성과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나 사회분위기적으로 변화가 시급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식층의 자녀일수록 좀 더 좋은 환경의 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것이 요즘 실정이다. 그러지도 못하는 서민층에서는 우울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요즘 TV에서 자주 영재들이 교육받을 시설이 없어 그 부모님이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방송을 자주 접하게 된다. 지난달 대입검정고시에 합격, 9개월 만에 초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친 영재소년 송유근(8) 군이 당장 적을 둘 정규학교를 찾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한다. 송 군은 대입검정고시 합격 이후 전국의 5∼6개 대학으로 부터 입학제의를 받는 등 겉으로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막상 송 군의 부모는 대학의 정규학기가 시작되는 내년 3월까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실상 혼자 공부해야 하는 유근이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큰 손실인가. 실상 우리의 교육은 오리려 영재를 바보로 만들어가는 결과를 낳고 반대로 미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일반학생을 영재로 만드는 교육의 결과를 낳고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의 핵심은 창의력에 바탕을 둔 교육제도의 운영여부에 달려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첫째로 실질적인 교육의 개선이 필요하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혁신적인 교육안을 내놓아 혼란을 야기하기 보다는 학생들이 충격을 덜 받고 개선을 쉽게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사회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뛰어난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며 아낌없이 격려를 해주는 사회의 분위기가 절실하다. 우리 사회가 모나거나 튀어나오면 안 되고 그저 둥글둥글 버무려진 채 묻혀서 살아가야 만이 편안한 사회라면 그 문제는 심각할 것이다.
책에서 읽었던 백남준의 일화가 있다. 미국 백악관에서 각계 인사가 초청된 가운데 백남준도 포함됐었는데 그 만찬 석상에서 기막힌 상황이 벌어졌다. 클린턴 대통령이 백남준의 앞을 지나면서 악수를 청하는 순간 백남준의 바지가 주르르 내려갔다. 팬티도 입지 않은 상태로 아랫도리가 완전히 들어난 아찔한 순간의 공연이 많은 백악관 인사들 앞에서 벌어졌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떠돌았으나 많은 기자들이 클린턴과 르윈스키 간의 섹스 스캔들, ‘지퍼게이트’를 희화한 퍼포먼스가 아니었겠냐는 기사가 우세하였다. 언론도 그러한 해석을 하며 그의 기지에 박수를 치며 찬사를 보냈다.
우리로서는 그의 제약 없는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또한 그런 백남준의 행동을 치기어린 추태가 아니라 예술로 인정해주는 미국 사회가 부러울 따름이다. 미국 교육제도가 우리나라 교육보다 훨씬 좋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의 교육도 문제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중요한 교육적 핵심을 우리 교육은 놓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톡톡 튀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쫓아가기도 힘든 현재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앞으로 나가기는커녕 후진하는 교육제도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강 연 옥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