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고(故) 이민호군(18)을 추모하는 ‘The Saddest Birthday(가장 슬픈 생일)’ 문화제가 23일 제주시청 앞에서 개최됐다. 이날은 아까운 나이에 산업재해로 숨진 이군의 열여덟 번째 생일날이었다.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학생이던 이군은 지난 9일 도내 모 제조공장에서 현장실습 중 프레스에 눌리는 재해를 당한 후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열흘만인 19일 결국 숨졌다.
이날 수능을 마치고 문화제에 참석한 한 고교생은 자유발언을 통해 “오늘 수능을 치르고 이 자리에 섰다”며 “그 어떤 사람의 죽음도 물음표로 남아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수험생들도 이군의 사망에 분노하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은 “전국에 있는 수많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한 목소리로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끝내 숨진 이민호 군은 학생 신분으로 일에 익숙치 않은 가운데 장시간 격무에 시달리며 일반 노동자와 같은 생활을 했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는 실습시간을 하루 7시간 이내로 규정하고 있으나 11~12시간 일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또 정규 직원이 일을 그만둔 후에는 10m에 이르는 라인을 홀로 뛰어다니며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현장실습제도의 총체적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취지는 학습이지만 현실은 단순노무에 더 가까웠으며, 실습수당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현행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은 교육의 의미를 벗어나 기업들의 이윤만 챙기는 저임금 노동 제공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민호군 사망 사고와 관련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교육부와 함께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호들갑을 떨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된 전례를 수없이 목도해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적폐청산’은 현재 전(前) 정부의 실정 등에 집중돼 있다. 향후의 적폐청산은 눈에 안 보이는, 바로 이런 분야에 주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