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흑돼지가 웰빙 시대의 고급 축산물로 평가받는 반면 이를 소규모로 생산하는 농가들은 판로대책 부실로 '밑지는 장사'에 울상 짓고 있다.
제주산 돼지고기가 다른 지방 소비자의 호평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가운데 특히 흑돼지는 일반 제주산 돼지고기에 비해 20% 안팎의 고가를 유지하면서 축산 농가의 소득원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1000마리 이상 대규모 사육에 나선 전업축산농가들은 도축 후 다른 지방 백화점 납품 등으로 일정 유통체계를 갖춘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나 소규모 흑돼지 사육 농민들은 '비싼 사육비를 들이고도 달리 유통시킬 길이 없는 탓에 일반 개량돈 가격에 넘기는 처지로' 도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바라지는 실정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도내 돼지 사육 규모는 지난해말 기준 342농가에 41만1000마리로 이중 68농가에서 흑돼지 1만6740마리를 키우고 있다.
흑돼지 사육농가 중 다른 지방 대형 소비시장이나 요식업체 등과 납품계약을 맺고 제 값을 받아 내는 1000마리 이상 대형 농가는 사육농가의 절만 미만으로 나머지 농가들은 도내 전문 음식점 등에 조금씩 내다 파는 형편으로 수지 타산을 맞추는데 급급한 형편이다.
흑돼지 및 개량돼지 생산성을 비교해 보면 마리당 출산마리수는 흑돼지 10.3마리. 흑돼지 7.3마리로 개체수 당 출산율 면에서 흑돼지가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다.
또한 모돈 1마리당 연간 출하두수는 개량돈 18.8마리. 흑돼지 12.2마리로 같은 기간 동안 개량돈의 경제성이 월등하다는 분석이다.
사육여건 역시 흑돼지에 비용이 훨씬 많이 들고 있다.
흑돼지 포유기간은 40일로 개량돈 24일에 비해 월등하게 길뿐만 아니라 90kg까지 비육기간도 흑돼지는 360일로 1년 가까운 기한을 요구하지만 개량돈은 160일이면 상품화가 가능하다.
이처럼 사육조건면에서 판이한 실정과는 달리 다른지방 백화점 및 대형 요식업소 납품가와 도내 자체 소비 등은 현격한 가격차이를 보인다.
연간 100마리를 출하하는 A농장의 경우 출하체중 80kg 출하연령 12~14개월 내외의 흑돼지 출하생산비는 33만원에 판매값은 kg당 1만5000원에 그치고 있다.
3600마리를 보유한 대형 B농장은 8개월 남짓에 100kg~110kg으로 상품화시키는 데 23만원을 들여 목살은 kg당 1만7900원. 삼겹은 kg당 1만9800원을 받고 있다.
여기에 개량돼지를 출하하는 일반농가의 현황을 비교하면 소규모 흑돼지 사육농가의 손해는 더욱 뚜렷해진다.
도내 39만마리 개량돈 평균치를 들여다보면 108kg 내외를 생산하는 데 6개월이면 충분하고 출하생산비는 18만원 정도, 판매가는 kg당 1만4500원 안팎으로 나타나 소규모 흑돼지 사육농가의 비효율성을 엿보게 했다.
똑같은 품질이지만 소규모로 유통방법을 별도로 갖추지 않은 농가들은 '흑돼지 사육으로 소득을 창출하려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셈이다.
북군 애월읍에서 흑돼지를 사육하는 K씨(55)는 "일반 개량돈에 비해 비싼 흑돼지 자돈 분양가를 시작으로 사육이 까다로운 편일 뿐 아니라 사육비용도 훨씬 많이 들었다"고 전제 한 후 "그래도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사육했으나 결국 도내 소형 소비처에 납품할 수밖에 없어 가격은 개량돈 수준을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면서 "개량돈을 사육한 경우와 빗대면 손해"라고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와 함께 다른 지방 일부 '제주산 흑돼지 판매업체'에 대한 점검 방안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도지사 품질인증제'를 실시, 도 내외 전문 판매점에 대한 분류작업을 서둘고 있으나 제주산 흑돼지 출하물량에 비해 '일반 판매업체수'가 과다한 것으로 알려져 제주산 흑돼지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한 특단의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제주산 흑돼지는.
우마와 함께 고구려시대에 북방으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주일대와 한반도에서 흑돼지를 키웠다는 기록에 미뤄볼 때 그 중 운반이 쉬운 소형종이 제주도에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1904년 조선농업편람에 흑돼지의 외모가 기술됐고 1920년 양돈개량실적과 재래종의 능력 및 일반보급상태에 관한 내용이 추가됐다.
1946년 국립농사시험장에서 8~10kg 정도의 왜소한 순종 재래돼지 사양시험이 실시된 이후 1970년대를 전후로 개발시대를 맞아 '대량생산을 위한 품질개량정책'이 추구되면서 흑돼지 재래종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후 1986년 제주흑돼지 성돈 5마리가 확보돼 축산진흥원을 중심으로 순수계통 번식 보존 사업이 전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