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건 용암·하얀 것은 조개 등 파편
화산재·현무암·조개 섞인 갈색모래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해안을 따라 다양한 색깔과 종류의 모래들이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해안가는 흰모래다. 제주도 땅위에는 검은 현무암이 많은데 흰모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제주도의 지표 대부분은 검은색 용암으로 뒤덮여 있다. 이 용암은 오랜 기간 비바람에 깎이고 하천에 운반되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작아져 결국 모래로 변하게 된다. 대표적인 해변이 바로 삼양 검은모래 해변과 이호해변이다. 검은모래로 찜질하면 신경통에 도움이 된다는 민간요법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현무암에서 유래한 검은모래에 다량의 철 성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제주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에메랄드 빛 바다 주변에는 어김없이 흰모래로 이루어진 백사장이다. 제주도 땅 어디에도 흰색의 암석이 없는데 어떻게 가능할까?
흰모래를 한줌 손에 떠서 살펴보면 흰색의 작은 알갱이들 대부분이 조개껍질과 해양생물 골격의 파편들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 온 것일까. 해양을 연구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제주도 바다는 수심이 수십 m 내외로 얕은 해저평원이 펼쳐져 있는데, 이 평원에는 수많은 조개들이 서식 할뿐만 아니라 조개껍질과 해양생물 골격이 많이 포함된 모래들로 구성돼 있다. 얕은 해저평원에 있던 이 모래들은 주로 겨울철 강한 바람과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밀려와 쌓인 것으로 곽지·협재·금능·함덕·김녕·월정·행원·표선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에 흰모래가 한정적으로 분포하는 원인은 파도가 바다 속의 퇴적물을 해안 쪽으로 운반해 오면 지형을 따라 움직이는 연안류가 특정 지역에는 모래를 쌓고 또 어떤 지역에서는 모래를 운반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흰색 백사장으로 대표되는 부산 해운대나 강릉 경포대의 흰모래들은 강물에 운반되어 쌓인 석영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제주도의 흰모래는 조개껍질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색깔만 같고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도에는 서빈백사 또는 산호모래로 알려진 백사장이 있다. 이 백사장은 하얀색 산호들이 부서져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강원대 우경식 교수는 이 흰모래들이 산호가 아닌 얕은 바다에 살던 홍조단괴로 구성된 특이한 백사장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홍조단괴는 따뜻하고 얕은 바다에서 광합성을 하며 몸속에 탄산칼슘을 침전시켜 성장하는 해양식물의 일종이다. 홍조라는 이름은 물속에서 살아있을 때 붉은 색을 띠기 때문이며, 죽고 난 이후 해안에 떠밀려 와서 단단한 석회물질만 남아 산호처럼 흰색을 띠게 된 것이다. 홍조단괴 해변이라고 해서 붉은 색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가 보는 백사장은 결국 흰색의 탄산염 골격만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갈색을 띠는 모래로 이루어진 해변들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화순·중문·신양·하도·모슬포 등을 들 수 있다. 이 갈색 모래는 주로 갈색이나 회색을 띠는 화산재와 검은색 현무암 알갱이, 소량의 조개껍질 등이 섞여 있다. 주로 화산재에서 기원된 물질의 비율이 높아 갈색을 띠지만 자세히 보면 다양한 색깔과 성분의 모래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주도와 비슷한 현무암으로 뒤덮인 하와이에는 초록색 모래로 이루어진 해변도 있다. 이 초록색 모래는 현무암이 침식되어 점차 작은 조각으로 변해갈 때 현무암과는 무게나 비중이 다른 감람석(橄欖石·초록인 올리브 색이어서 영어로 olivine이라 부른다) 광물이 분리되어 연안류에 의해 한곳에 쌓여 만들어진 해변이다. 하와이와 동일한 현무암으로 구성된 제주도에서도 언젠가 초록색 해변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제주도의 모래들은 수많은 사연을 겪고서 온 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생각하고 모래를 본다면 제주도의 자연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이지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