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용암동굴 연구, 그 가치와 전망
제주 용암동굴 연구, 그 가치와 전망
  • 안웅산
  • 승인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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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만장굴 포함 도내 140개 분포
입구 정도 파악 수준·상세 조사 절실

제주의 용암동굴은 탐라순력도(1702년)에 한 폭의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김녕관굴’이란 제목의 이 그림에는 군졸들이 횃불을 밝히고, 남녀(의자처럼 생긴 작은가마)를 탄 목사가 동굴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김녕사굴에는 조선 중종 때 서련 판관이 사굴에 사는 큰 구렁이를 퇴치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제주의 용암동굴은 오랜 기간 인간의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용암동굴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인간이 달 탐사를 비롯해 지구 밖으로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용암동굴도 연구되기 시작했다. 달 표면에는 릴(Rille)이라 불리는 수로(채널)형태의 지형들이 발달해 있는데, 그 규모가 폭 수 ㎞에 달하고 깊이 또한 수백 m에 이른다.

물도 존재하지 않는 달에 이러한 릴이 형성되는 원인이 궁금했던 것이다. 학자들은 직접 달에 가서 연구하기는 어려웠기에 지구에서 유사한 지형을 찾아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연구된 호주에서는 이 지형이 용암이 흘러간 길이거나 용암동굴이 붕괴된 흔적이라고 밝혀지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연구는 차츰 용암동굴의 형성과정을 밝히는 방향으로 옮겨 가게 된다. 초기에 학자들은 용암이 흘러가면서 표면이 굳고 그 아래의 용암이 빠져나가고 남아 용암동굴이 됐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세계 도처의 용암동굴들이 연구되면서 이러한 단순한 해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제주도 만장굴도 이러한 해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동굴중 하나다.

동굴의 상부나 하부에 같은 방향으로 여러 층의 동굴들이 존재하는 다층동굴인 것이다. 단순히 용암의 표면이 굳는 것만으로는 다층동굴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 다층동굴들은 지표로부터 20~30m의 깊은 곳까지 발달한다. 초기에 이러한 용암동굴들은 용암이 여러 번 반복해서 흘렀거나 아니면 계곡과 같이 깊고 좁은 곳을 따라 흘러가며 형성된 것으로 해석됐다.

대규모 다층동굴들의 형성과정은 1970~90년대 하와이, 이탈리아 에트나와 같은 현생화산 지역에서의 관찰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게 됐다. 연구에 따르면, 용암이 오랜 기간 같은 통로를 따라 흘러가며 동굴 바닥을 깎아 내려 서서히 깊어지게 된다.

결국 분출하는 용암의 양이 같다면 동굴내부의 용암수위 또한 낮아지게 되고 그 표면이 굳어 새롭게 용암층이 형성되어 여러 층의 용암동굴이 형성되게 된다는 것이다. 만장굴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용암동굴인 것이다.

만장굴은,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동굴로 알려진 하와이의 카즈무라 동굴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그 규모나 동굴 내부의 다층구조가 잘 발달된 용암동굴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제주도에는 약 140여개의 용암동굴이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는 용암동굴의 입구 위치만 파악된 것이다. 동굴의 진행방향과 형태·깊이 등에 관한 보다 상세한 자료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의 가축분뇨 무단투기 사건뿐만 아니라 각종 대규모 사업 추진 때마다 주변 지역에 분포하는 용암동굴들을 재조사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의 연구들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용암동굴들이 용암분출량·지속시간·분출패턴·지형·경사 등 각종 요인에 따라 규모 및 형태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는 제주도 용암동굴에 대한 정량화된 측량과 기재가 선행된다면, 제주도 지하 용암동굴의 발달양상을 예측하고, 각종 인간행위에 대한 영향을 평가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제주의 소중한 지질학적 자원인 용암동굴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대응으로 비효율적인 수고로움을 반복할 것이 아니다. 예측하고 방비하고 우회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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